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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Feb 03. 2022

블랙홀이 삼킨 사랑에 대한 소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느낌을 받을까? 내가 사랑하는 걸 우주가 뺏어가는 것 같은 느낌. 구체적인 어떤 적대자가 나의 것을 빼앗아 가는 게 아니라, 기가 막힌 우연이 여러 번 겹쳐 생긴, 막상 겪으면 이건 필연이겠지, 운명이겠지, 하고 순응하게 되는 블랙홀 같은 사건이 내가 너무 사랑한 걸 삼키고 다시는 되돌려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블랙홀은 우주에 그냥 있는 거니까, 그리고 너무 강력하고 거대하니까 저항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블랙홀이 무엇을 삼켰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그걸 남들에게 설명해줄 수도 없다. 흔적이 없으니까. 블랙홀의 심연에는 블랙홀뿐이다. 블랙홀에 삼켜진 것이 삼켜졌다는 걸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친구들에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떠들곤 했다. 머릿속이 그 대상으로 가득 차서 쏟아 내지 않으면 그게 덩어리 채 점점 커져서 나를 잠식할 것 같았다. 떠들면서도 계속 새로운 자랑거리가 떠올랐다. 심지어 뭘 자랑했더라. 밥을 얼마나 조용하게 먹는지? 짧은 머리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속상해하는 표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런데 어김없이 내가 사랑해서 내 것인 양 자랑한 대상들은 사라진다. 어디로?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랑했던 대상은 적어도 내게는, 그 대상의 탈을 뒤집어쓴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없이 낯설고 한없이 잿빛이 된다. 한없이 멀고 한없이 혐오스러워진다. 어떻게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랑과 많은 이야기를 이 대상에게 쏟아부었지? 스스로 자책하게 될 만큼의 혼돈이 생긴다.


블랙홀이 삼킨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나의 사랑일까?  가정을 세운다면 뭐가 달라질까? 내가  대상을 죽을 때까지는 사랑할  없다는 사실?  사랑은 너무 가변적이어서 대상과 나를 위해 사랑을 시작하면  된다는 결론?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되기 전까지만 좋아하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다른 가정? 블랙홀이  사랑을 삼키면  다른 사랑을 낳아서 삼켜질 때까지 열렬히 키우면 된다고 인정하는 마음가짐?


위의 모든 문장들이 괴이하다. 왜 이렇게까지 나는 사라진 사랑의 대상에 대해 혹은 사라진 내 사랑에 대해 집념을 가지는 걸까. 왜 수없이 반복하고도 또다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자랑하는 걸까. 좀 덜어낼 수는 없을까. 감정을. 사랑을. 갑자기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내 사랑이 블랙홀에 먹혔다는 것을 피부로 절절하게 느껴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쓸쓸하게. 그 정도만 슬플 수 있다면 언제든 산뜻하게 새로운 반복을 할 수 있을 텐데.


김홍중 「은둔기계」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중독은 반복에 대한 사랑이다.’ 문장을 오래 곱씹다가 내 식대로 뱉어본다. ‘사랑은 반복에 대한 중독이다.’ , ‘반복되는 사랑은 중독이다.’ .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연속되는 대체 중독으로 무한한 구멍을 돌려 막는 거라고 확신했다. 사랑과 중독과 반복은 내 삶에서 빠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떤 친구가 그랬었지. 자기는 사랑이 너무 지겹다고. 이미 너무 많은 사랑을 해봤고, 그 사랑이 모두 자기에게 지독했고 상처로 가득했기 때문에 이제는 남의 사랑 이야기도, 자신의 사랑이 이야기도 재미없다고 그랬다. 오히려 그 친구는 이제 재테크, 커리어 같은 주제들이 흥미롭다고 했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친구의 마지막 일기는 온통 사랑 이야기였다. 블랙홀이 삼킨 사랑 이야기 같은 것.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죽지 않고 외계인의 탈을 쓸 일도 없는 것. 음악, 책, 그림, 음식, 향수 같은 것만 사랑하면 어떨까? 그런 것들은 블랙홀이 삼켜도 그때의 내 상실감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대체불가능성은 사랑의 필요조건 아닌가? 결국 내가 이 에세이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더라. 나는 사랑에 관한 한 언제까지나 이런 답 없는 질문을 반복하게 되고, 이 반복을 사실은 사랑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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