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헌과 햇님

by 가영

주헌은 4남매 중 외아들이다. 종갓집 몇 대 자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절 아들을 더 보듬고 출세시키고자 하는 집의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헌의 위로는 누나가 두 명, 아래로는 여동생 한 명이 있다. 그 중 주헌의 여동생은 유별났다. 집안 사람들은 여동생만 빼고 모두 소탈하였고, 아끼고자 하였으며, 공동체를 더 우선시했다. 그러나 주헌의 여동생은 가난한 집안 사정과 무관하게 갖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갖고자 했고, 가졌다. 초등학생 시절 나이키 운동화가 갖고 싶다고 며칠을 울며불며 떼를 써 결국 엄마에게 그 운동화를 쟁취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런 여동생을 나무라기보다 결국 그 욕망을 못 이기는 척 들어주는 편에 속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식 중 딱 한 명만 대학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시절엔 당연하게도 큰아들 혹은 외아들이 가는 것이었다. 주헌의 집에서도 ‘당연하게’ 주헌을 대학에 보내고자 했다. 그러나 주헌의 여동생이자 집안의 막내는 그 ‘당연한’ 룰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여동생은 주헌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에 자기가 가고 싶다고. 주헌은 그 편지를 받고서 여동생에게 대학을 양보했다. 주헌의 성격으로 미루어보건대, 주헌은 여동생을 긍휼하게 여겼다기보다 자신은 대학에 가지 않고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양보했을 것이다. 자신감. 주헌은 일평생 그 단어 하나만큼은 온몸으로 체화하며 산 사람이다.


주헌은 그 뒤로 군대에 들어갔고, 군대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수면 시간을 줄이고자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명상을 알게 되었고, 명상을 잘하고자 여러 가지 고서들을 혼자 찾아보며 독학했다. 주헌은 제대 이후 말 그대로 주경야독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에 다녔다. 야간 학교에서 만난 여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주헌은 그 여학생과 10년을 ‘죽을 만큼’ 사랑했다고 언제나 회고했다. 그러나 여학생의 집에서는 주헌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없고,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주헌과 딸이 결혼하면 불행할 것이라는 예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주헌은 ‘인연은 끊어져도 혈연은 못 끊어내.’라는 말을 하며 ‘죽을 만큼’ 사랑하던 여학생에게 이별을 고했다. 주헌은 자신감만큼이나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주헌은 서른 살이 되었다. 주헌은 전북대 앞에 호프집을 차렸다. 낮에는 돈가스를 팔아 밥장사하고 밤에는 골뱅이무침과 반건조 오징어 등의 안주를 팔아 술장사를 하는 전형적인 호프집. 호프집을 차리기 위해 돈가스 장인 밑에서 일하며 돈가스 만드는 법과 돈가스 소스 비법을 배웠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특한 인테리어를 직접 실현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프레야’에 입장하면 물 냄새가 훅 끼쳤다. 주헌이 직접 의뢰해 제작한 테이블 때문이었는데, 그 테이블은 바로 ‘어항 테이블’이었다. 두꺼운 원형 유리를 상판으로 제작하여 테이블 안쪽이 훤히 보이도록 하였는데, 테이블 안쪽에는 금붕어들이 비단 같은 꼬리를 흔들며 사는 물 속이었다. 수초와 자갈을 깔아 놓고 금붕어를 대여섯 마리 넣어 놓은 그 어항 테이블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인테리어였다. 주로 대학생이던 손님들은 유유자적 헤엄치는 금붕어 위에 맥주병이나 돈가스 접시를 놓고 술과 음식을 즐기는 셈이었다.


프레야는 아이슬란드어로 프레이야(Freyja)라고 불리는 북유럽 신화의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레이야는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 성, 전쟁, 금, 예언을 관장하는 여신이며, 용모가 눈부실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서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그녀를 사랑하면서 부러워한다. 심지어 난쟁이나 신들의 적인 요툰족마저도 프레이야를 차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이니, 과연 주헌은 아름답게 꾸민 이 호프집을 통해 풍요와 금을 불러오고, 결국 삶이라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과 투지를 호프집에 담은 것이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었다. 주헌은 그 시절 학과별 손님들의 특징을 알아냈다. 의대생들은 먹은 술병을 절대 치우지 못하게 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술을 잘 먹고 얼마만큼 먹었는지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경영대생들은 어떤 학과보다도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셨다. 주헌이 내심 제일 좋아하는 손님은 체대생이었다. 가장 많이 먹고 빠르게 해산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프레야에 보험을 하는 사람이 영업을 왔다. 가게 보험은 들어야 한다고, 설계사는 끈질기게 설득했다. 주헌은 호탕하게 제일 비싼 가게 보험을 들었다. 프레야는 그만큼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곳이라고, 주헌은 그렇게 생각했고, 반면 설계사는 주헌이 통 크고 돈을 아주 잘 버는 상인이라고 생각했다. 설계사는 자신의 여동생을 주헌에게 소개해 주었다. 설계사의 여동생은 스물넷으로, 부안에서 전주로 올라와 경리를 하고 있었고,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 못 해본 숙맥이었다. 주헌은 별 생각이나 기대 없이 소개를 받았다.


햇님과 주헌은 다방에서 처음 만났다. 햇님은 커피를, 주헌은 쌍화탕을 시켰다. 햇님은 그간 자신을 좋다고 했던 여러 남자를 모두 거절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햇님은 주헌을 처음 보았을 때 왜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마음이 동했다. 커피 때문이었을까? 햇님은 자신과 다르게 오똑하고 강인한 콧날을 가진 주헌에게, 옅은 쌍꺼풀에 큰 눈을 가진 주헌에게, 단단하고 군살 없는 육체를 가진 주헌에게 설렜다. 주헌은 햇님의 반반하고 예쁘장한 얼굴이, 장난스레 건넨 신문의 십자말풀이를 막힘없이 푸는 햇님의 어휘력이 마음에 들었다.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주헌은 햇님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주헌에게 햇님은 부담스러운 통제자였다. 어쩌면 주헌은 햇님을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부담스럽게 느꼈고 햇님은 주헌을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만큼 서운함을 표출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둘의 간극은 컸다. 주헌은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아 햇님에게 이별을 고했다. 일에 전념할 때라고. 햇님은 알겠다고 했다. 둘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쪽 삼신할매가 장난을 쳤는지는 몰라도, 헤어지고 나서 햇님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햇님은 주헌에게 연락해 애가 생겼는데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이 애는 지울 생각이라는 것을 알렸다. 두렵긴 해도 햇님은 정말 애를 지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내심 자신이 좋아하던 주헌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비장하게 알렸다. 주헌은 ‘생명은 지우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며, 햇님과의 결혼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천륜 운운하며 죽을 만큼 10년간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졌던 주헌은 생명 운운하며 사랑하지도 않은 여자와 결혼했다. 주헌의 가치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둘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했고, 햇님은 임신 중에도 프레야에 나와 주헌을 도왔다. 그럭저럭 잘되던 프레야는, 주헌과 햇님의 딸이 세상 밖으로 나오던 그날, 역대 최고 매출을 찍을 만큼 바빴다. 주헌은 너무 바빠 하마터면 딸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 할 뻔했다. 주헌은 아직도 그날 일을, 대학을 졸업한 딸에게, 첫 회사에 입사를 앞둔 딸에게, 남자 친구와 헤어진 딸에게 말하곤 했다. ‘이상하게 네가 태어나던 날에만 프레야가 백만 원을 찍었어. 평소에는 이 삼십 정도였는데. 그러니까 너는 잘살 거야.’ 이런 근거 없는 주헌의 확신은 딸의 마음속에서 뿌리 튼튼하고 잎이 우거지는 나무가 되었다.


주헌과 햇님은 딸을 낳고 이듬해 바로 아들을 낳았다. 딸 하나, 아들 하나. 햇님은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프레야는 그럭저럭 잘되는 호프집이었고, 살 만했다. 그러나 둘은 영업이 종료된 프레야에서 아이 둘을 앉혀 놓고 벼락같이 다퉜다. 햇님은 서럽고 무서워 울었고 주헌은 호랑이처럼 고함 질렀다. 아이 둘은 세상이 무너진 듯 목청껏 울었다. 그래도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주헌은 햇님의 바람을 의심했고 증거가 있었다. 햇님은 아니라고 했다. 아직도 진실은 햇님만이 안다. 그 뒤로 주헌은 햇님을 무시했고 햇님은 주헌을 경멸하거나 멸시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햇님의 두 번째 바람으로 둘은 이혼했다. 귀책 사유가 햇님에게 있었으므로 양육권은 모두 주헌에게 갔다.


햇님은 초등학교에서 하교한 아이 둘을 거실에 앉혀 놓고, 미숫가루를 타 주었다. 그리고 울었다. 아이 둘은 우는 엄마를 보며 같이 울었다. 햇님은 아빠에게 편지를 썼으니 편지를 아빠에게 전해주라고 말한 뒤 떠났다. 딸은 엄마가 영영 떠나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딸은 엄마가 떠난 뒤에도 한참을 울었으며, 엄마가 아빠에게 쓴 편지를 훔쳐봤다. 그것은 햇님의 딸이 인생에서 최초로 훔쳐본 타인의 마음이었다.


에이포 용지 두 장을 가득 채운 손편지. 햇님의 딸은 그걸 계속해서 읽었지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혼란에 빠졌지만 슬픔도 여전했다. 딸은 특히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계속해서 읽었다. ‘정말 사랑했어.’ 햇님의 딸은 그때 사랑을 재학습했다. 햇님이 자신에게 말해주던 ‘사랑해.’, 그걸 학습하여 그대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말하던 자신의 사랑이, 햇님이 주헌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정말 사랑’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햇님의 딸은, 정말 사랑이란 가슴이 미어지게 아픈 이별과 함께 온다는 것을, 그것을 빼면 정말 사랑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지난하고 우스운 전투가 삶이라는 전쟁 속에서 계속됐다. 햇님은 며칠 뒤 그리움에 못 이겨 딸과 아들을 몰래 데리고 시골로 도망쳤다. 주헌에게 일언반구 없이. 햇님의 딸은 주헌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햇님이 너무 슬프고 유약하고 외로워 보였기 때문에 따라갔다. 주헌은 일 년 동안 사라진 딸과 아들을 찾아다녔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무작정 전라북도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딸과 아들의 이름을 물었다. 도 하나를 끝장내도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그다음 도를 넘어가고, 또 도를 넘어갔다. 주헌은 마침내 충청남도 금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딸과 아들의 이름을 찾았다.


주헌의 딸은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친구들과 다름없이. 그런데 급식실의 출구 쪽에서 어른 한 명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세상에 없던 미소로 환히 웃으며. 주헌의 딸은 너무 놀라서 숟가락을 든 채로 얼음이 되었다. 생각했다. 꿈일까? 라고. 옆에 있던 친구가 주헌의 딸에게 물었다. ‘아는 아저씨야?’ 주헌의 딸은 아빠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만 속으로 분명히 생각했다. 우리 아빠야.


주헌의 딸이자 햇님의 딸은 이제 서른을 훌쩍 넘겼다. 한 번씩 주헌의 나이로 지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햇님의 나이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주헌의 나이로 지금 자신은 갓난아기인 딸과 아들이 있고,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다. 명백한 가장의 나이다. 햇님의 나이로는, 초등학생인 딸과 유치원생인 아들이 있다. 이혼 직전의 위기를 겪고 있다. 남편과는 말도 하지 않고, 외로워서 교회나 나가볼까 했는데, 돈을 달라고 교묘하게 사람을 몰아가는 사이비여서 당장에 그만뒀다.


지금 주헌의 딸이자 햇님의 딸은 직장도, 자녀도, 남편도 없다. 하지만 친구들은 있고, 제철 식재료로 혼자서 먹을 요리를 곧잘 한다. 냉이 된장국이라든지, 당근 카레라든지, 강릉 두부를 넣은 청국장이라든지. 오래된 바나나로 설탕 하나 안 넣은 팬케이크를 만들기도 한다. 가끔 책을 읽고 시를 짝사랑한다. ‘죽을 만큼’ 시를 사랑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이 깊은 짝사랑은 오래되었다. 하지만 시에 대한 이 사랑이 정말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말 사랑은 가슴을 저며내는 이별과 같이 오니까. 그러니까, 주헌의 딸이자 햇님의 딸은 시와 헤어질 생각은 없다. 그럴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를 정말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가끔 시를 쓰고, 가끔 시에 골몰한다.


어느 날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자신의 시가 자신에게로 웃으며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장면을.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그 찰나의 무한한 순간을.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놀라지만, 확신에 찬 울림으로 떠오르는 그 말을 생각한다. ‘내 시야. 저건 내 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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