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불편한 걸 못 견뎌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반도 덜 차있는 상태에서 외출하는 걸 싫어했다. 이동시간이 길 때 넷플릭스를 미리 다룬로드해두지 않으면 출발하기 전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렇게 신경을 쓸 바에는 차라리 데이터 무제한 요금으로 바꿔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 휴대폰 요금제를 바꾸어버리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걸 꺼려했던 것 같다. 아니,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내다 보면 편한 상황보다 불편한 상황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마음에 차지 않을 때도 많고, 남으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때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계속 미간에 주름을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이런 상황의 반복이라면 생각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보이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니까.
원론적으로 따져보자면, 사람은 세포로 만들어져있다. 죽은 세포는 사라지고, 빈자리는 새 세포가 매운다. 숨 쉬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심장을 생각해 보자. 심장조차 분극과 탈분극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그래프를 만들어내며 뛴다. 그 그래프가 만들어져야만 살아가고, 가장 안정적인 그래프라 말할 수 있는 직선을 그리면 더 이상 펌프질을 하지 않는다. 뛰는 심장을 안고 살아가는 동물에게 추우면 움츠려 열을 보존하고, 더우면 땀을 흘려 열을 내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불안정한 상황을 반복하며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안정궤도를 그리려고 발버둥을 치는 거니까. 이리저리 발버둥 치는 걸 두려워하지는 말자. 차라리 어떻게 발길질을 해야 더 편안하게 숨을 고를 수 있을지를 고민하자. 이렇게 생각을 고쳐하니 여유롭게 게으름을 피울 줄도 알게 되었다. 남들이 무슨 짓을 하든 마음 편히 팔짱 끼고 허허 웃음 지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래, 어차피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심장처럼 불안정하게 뛰고, 더울 땐 땀 흘리고 추우면 마음껏 움츠러들자.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