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들이 있어. 나한테는 그게 노부부, 아기, 꽃, 따뜻한 국이 있는 저녁 식탁.
내가 말했었나? 나한테 오빠가 있었다고. 만난 적은 없는데, 이름이랑 그 아기의 역사는 알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 아빠가 오빠 사진은 다 찢어서 태워버렸대. 취하지 않으면 얘기도 잘 꺼내지 않아서, 사실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
한 번은 엄마랑 맥주를 마시다가 엄마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하더라. 앞으로 점은 보지 말라고. 엄마가 오빠를 임신했을 때, 친구 점 본다는 걸 따라서 갔다더라. 근데 엄마한테 한마디를 탁 던지더래. 지금 배에 있는 아이가 건강하게 나오면 남편이 건강하지 못할 거고, 아이가 건강하지 않게 나와야 남편이 건강할 수 있다고.
그 뒤로 매일 엄마가 만삭일 때도 아빠가 잠에 들면 숨을 쉬나 안 쉬나 가만히 쳐다보고. 푹 잠을 못 잤대. 오빠가 아기일 때 엄마 아빠 곁을 떠난 이후로 매일 스스로를 자책했다는 거야. 그 점 보는 거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아기가 죽지 않았을 텐데. 결국 내가 죽였네. 하고.
신생아 중환자실 실습을 할 때 우리 오빠랑 똑같은 병을 앓는 아기가 있었어. 엄마가 얘기했던 것처럼 장이 안 좋아서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더라도 결국 소화를 못하니까 빼빼 말라있더라고. 그 아기를 며칠 봤어. 나는 처음 그 아기를 봤을 때부터 우리 오빠가 생각나서 저 아이만큼은 꼭 살아서 이 병원을 나가길 기도했어. 종교도 없는 내가 정말 간절하게 그 아기를 보면서 기도를 하고 있더라고.
마지막 날은 점점 심박수가 느려지더니 아기가 숨을 헐떡이더라.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고 콧물이고 다 흘러나와서 저 구석으로 옮겨가서 멀찍이서 아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어. 그 땅콩 같은 손가락 발가락이 파랗게 된 채로 점점 차가워지더라.
아기가 죽고 나서 아기 부모가 한두 시간 동안 아기를 끌어안고 이름을 하염없이 불렀어. 여자 아이였는데, 토끼 그림이 그려진 솜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파란 땅콩도 하나하나 정성스레 쓰다듬고.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 엄마 아빠도 “진우야, 진우야” 부르고 마음속 저 구석 어디로 꽁꽁 숨겨놨겠구나.
여하튼 그날 실습 끝나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괜히 반찬 잔뜩 해서 보내달라고 어리광 부렸어. 멸치볶음도 바삭하게 해달라고 얘기하는데 그냥 목젖을 한 대 쾅 맞은 것처럼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아몬드도 많이 넣어달라 그러고 끊어버렸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