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

-나이테가 주는 교훈

by 근근재


『예기』, <곡례편>에는 ‘나이 예순은 기(耆)라 하여 노인의 문턱에 들어서는 나이이므로 자기가 할 일을 앉아서 시켜도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일흔 살은 노(老)라 하여 완전히 늙었으므로 벼슬은 후배들에게 물려준 다음 은퇴하는 나이라고 하였는데, 이 둘을 합해서 기로(耆老)라고 합니다. 그리고 노인들의 연령과 덕행을 숭상하기 위해 잔치를 베푸는 것을 기로연, 또는 양로연이라고 부릅니다.


잔치는 매년 음력 9월에 행해지는데, 처음에는 사적인 모임이었던 것이 15~16세기부터 의식과 절차가 정례화된 나라의 공식적 행사로 발전하였습니다. 정조는 양로연이 진행될 적에 친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 대한 예를 다하였으며, 양로의 잔치가 나라의 성대한 모임이라는 의미부여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당시의 노인들에게 장수에 대한 예우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품까지 기리면서 임금이 친히 예를 실천하는 것이 양로의 본 의미였던 것입니다.


가을이면 전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양로연입니다. 각 지역의 유림(儒林)이나 향교(鄕校), 서원(書院) 등에서 실낱같은 전통의 경로사상을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흐릿하게나마 면면히 이어지는 전통이지만, 어른에 대한 시각은 예전과는 사뭇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의 어른은 나이와 비례하여 학식과 덕망도 높이 쌓아서 아랫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대상이었다면, 지금 시대에는 이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찾기가 힘듭니다. 대신에 마치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처럼 단지 나이만 많이 먹은 사람이라는 뜻의 ‘노인(老人)’이 어른의 상대어처럼 된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켜서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하면 속칭 꼰대나 꼰대질이 되는 것입니다.


꼰대의 일반적 특성은 나이가 능력이나 권력인 것처럼 유세를 떨며 나이 개수로 서열을 구분하려 합니다. 무조건 아랫사람에게 하대하는 경박자(輕薄子)의 언행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셀프 접대’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과 실소(失笑)가 교차합니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세월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절대적 우선순위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수령(樹齡)이 오래된 나이테를 보면 단순한 모양이 연속으로 겹쳐진 띠 형태가 보입니다. 문양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잔잔하게 춤추는 듯한 모양이 반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연륜(年輪)은 원래 나이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연륜이 쌓인다’는 말은 나이테가 한 줄씩 쌓이는 것처럼 세상의 경험과 지혜도 함께 축적돼 나간다는 것입니다. 인품을 머금은 연륜이 우리가 말하는 어른입니다.


이러한 어른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라고 합니다. 어른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도덕적 가치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며, 지위나 귀천으로 관계를 규정짓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을 예우할 줄도 압니다. 무조건 대접받기만을 바라는 ‘꼰대’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image05.png 노년의 다정한 부부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우리 사회에 노인 연령에 대한 기준을 변경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기존에 ‘노인=65세’라는 공식이 깨지고 70세로 상향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이제라도 우리 사회는 70세 어른 시대를 맞이할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지 물리적 나이의 상향 조정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훌륭한 인품을 지닌 어른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노인보다 이 사회가 닮고 싶어 하는 어른이 많아져야 합니다. 어른보다 한층 더 높은 신의 경지가 ‘어르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후대가 본받을만한 인품을 지닌 어르신이 많아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노인이 아니라, 열린 세대의 어른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지닌 어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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