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벽 앞에서

죽음의 반대말은 사랑

by 홍푸앙


2018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몽마르뜨 묘지를 혼자 걷고 있었다. 겨우내 냉기를 머금었던 차가운 비석들 위로 따스한 5월의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실 묘지의 정적과 고요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망자들은 언제나 침묵을 지키기 때문이다.


몽마르뜨 묘지에는 유명인들의 묘가 많다. 어떤 비석들은 위인들의 기념비를 떠올리게 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어떤 비석들은 작고 초라하다. 심지어 석관 뚜껑이 부서진 채 열려 있는 무덤도 종종 눈에 띈다. 묘지의 주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남겨진 비석들은 생전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듯 위용을 뽐낸다. 어쩌면 비석의 크기는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은 망자의 바람과 비례하는지도 모르겠다.


묘지를 천천히 걷던 중, 벤치에서 키스를 나누는 커플을 보았다. 그들의 열기는 묘지에 흐르는 냉기를 뜨겁게 데우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죽음에 맹렬히 저항하는 전사들처럼 보였다. 만약 유령이 존재한다면 묘지의 주인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분명 사무치는 부러움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무채색 비석들을 배경 삼아 사랑을 나누는 커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흔히 죽음의 반대는 ‘생존’이나 ‘삶’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죽음의 반대는 바로 사랑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유레카”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사색의 단면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에겐 위대한 발견에 필적할 만한 깨달음처럼 느껴졌다.


이런저런 사색에 잠겨 있던 사이, 어느새 묘지의 폐문 시간이 다가왔다. 묘지를 나가기 위해 출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문 앞에서 할머니 한 분과 묘지 관리인이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보였다. 아마도 할머니는 묘지를 종종 찾는 유족일 것이다. 인사를 마친 할머니는 작은 손수레를 끌고 철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철문 바로 옆에 위치한 계단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께 정중히 도움을 제안하고 손수레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별안간 번쩍 들어 올려지는 수레의 무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당연히 무거울 거라 예상했던 손수레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할머니와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하셨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조금 슬퍼졌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가던 중, 작은 공원 한편에서 타일로 예쁘게 장식된 벽을 보았다. 일명 사랑의 벽으로 유명한 장소다. 사랑의 벽에는 세계의 모든 언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벽에 적힌 수많은 ‘사랑’을 바라보며, 나는 묘지에서 만난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가 사랑했던 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사랑은 온전히 남았다. 할머니는 앞으로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묘지를 찾을 것이다.


때로는 왜곡된 사랑이 애증과 원한을 낳기도 하고, 사람들을 죽음이나 불행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랑은 삶의 원천이자 삶의 이유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