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4화. 터닝포인트 혹은 시발점

by 미스탠저린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공부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일 때문에 원룸 오피스텔에서 살고 계셨는데 거기서 집안일도 도와주며 공부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아버지의 제안이었다.

사실 계속 시간은 흐르는데 나 스스로도 용돈을 받아쓰기가 죄송하고 눈치 보일 때쯤 아버지가 먼저 이렇게 웃으며 얘기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가사노동의 대가로 월 50만 원을 받기로 하고 그 돈으로 내 모든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때 당시 "지붕 뚫고 하이킥"이 전 국민의 리모컨을 지배하던 시트콤이었는데 신세경의 가정부 역할이 마치 너랑 비슷하다며 놀려대듯 웃으셨지만 나는 아빠의 이런 개그코드를 좋아한다.

경상도 남자라서 다정하고 살가운 표현은 몸에 모기 한 마리 지나가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게 느껴질 터 - 그래도 이렇게라도 웃으며 표현해 주셔서 다른 가부장적인 아빠들보다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이후 꾸준히 승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때 당시 진한 남색에서 지금의 대한항공 유니폼으로 바뀌어서 경쟁률이 더 치열했던 걸까.

매 채용마다 지원자는 만 명이 넘었다.

유니폼까지 입고 영어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최종에서 떨어지니 그동안 준비한 모든 과정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과연 취업이라는 걸 할 수는 있을까.


결국 난 증권사의 아주 짧은 이력과 그동안 공부한 영어성적으로 금융기관에 들어갔다.

결국 내가 원하는 꿈에 다가가지 못했고 3년의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여러 번 도전이라도 해봤으니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봤는데도 안 되는 거면 더 이상

내 길이 아닌 거다.


지금에서야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하나의 꿈을 안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장도 그만뒀고 무엇보다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20대 중 3년을 온전히 여기서 쏟았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


이후에 항공사에 취업해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도,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만 봐도 속상했는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차츰 나아졌다.


그리고 내 옆엔 오랜 연인. 그가 늘 함께했다.

그는 대학생이었지만 매번 좌절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아마 그도 학업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었을텐데..

참 속이 깊고 나에게는 고마운 사람이다.


여하튼, 연수 수료 후 나는 집 근처 지점으로 발령이 났고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바쁘기로 유명한 지점에 배치되어 항상 대기고객은 20명이 넘었고,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쳐다보는 고객들로 늘 눈치가 보였다.


근무환경이나 연봉, 퇴근시간 모두 다 비교해도 3년 전 증권사가 더 나았지만 이 회사까지 그만둬 버리면.. 다시 취업할 자신이 없었다.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증권사를 그만두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


이래서 인생이 쉽지 않은가 보다.

매번 나에게 주어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답을 골랐음에도 그게 오답이 되기도 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