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5화. 말로만 듣던 블랙컨슈머

by 미스탠저린

연수를 받았어도 단순히 내용을 기억하는 것과 직접 손님을 대면하는 일은 여전히 천지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하루하루를 햄스터가 쳇바퀴 돌 듯 보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도 나와 마주한 고객의 목소리와 인상, 그 사람이 주는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내가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조차 잊기도 한다.


이런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중에도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번개를 치면 그때는 또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서기도 했다.

마음 둘 곳 없는 신입이 이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다른 지점은 민망할 정도로 눈치 주고 업무도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신입 직원을 온전한 마음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배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 후배에게 쏟아야 하고 그렇다고 소비한 시간만큼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야근과 회식으로 하루 온종일 나의 시간을 갈아 넣었고 주말에는 나의 연인을 만나 한 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손님이 와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는지 그런 얘기들로 나의 마음을 쏟아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번호표를 띵동 하고 눌렀는데 50대 한 남성이 출금을 한다고 앞으로 왔다.

이제 출금정도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서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리고 최대한 상냥하게

"고객님, 찾으실 금액은 여기에 작성해 주세요."

그리고 전표를 받아서 보니 180,009원.

나는 180,010원을 현금접시에 가지런히 정리해서 감사인사와 함께 드렸다.


"내가 18만 9원 달라고 했지! 언제 십원 달라고 했어? " 아니 이게 무슨 말인 거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네?" 하고 다시 묻고 머리가 하얘졌다. 그 고객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건지 소리를 질러댔고 지점장 나오라며 지점장 방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사람의 발걸음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내 몸의 온도가 1도씩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마에서 흐르기 시작한 식은땀이 앞머리까지

송골송골 맺혔고 내 옆에 출납근무를 하던 대리님이 금고에 1원짜리 몇 개 있었던 거 같다며 한번 가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고객을 등지고 금고로 들어가는 순간 아찔한 한마디가 들렸다.

"대학원도 안 나온 년이. 진짜 재수없게구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길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 걸까.

분명 난 선명하고 똑똑히 들었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은 척 금고로 들어갔고 1원짜리 6개가 있어서 들고 나왔다.

팀장님이 6원이라도 드리면 되겠냐고 하자 고객은 앞에 놓여있던 전표를 뒤집어서 자신의 주소를 쓰고는 팀장님께 던지듯 내팽개쳤다.


"나머지 3원 더 찾아서 우리 집으로 보내고 저 신입인지 뭔지 쟤 교육은 똑바로 시켜! 그리고 나 정신적 피해 입은 거 봤지? 3원만 딸랑 보내지 말고 사은품도 같이 보내!"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지만 정신적 피해는 내가 받은 거 같은데 내 상처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 걸까.

이런 감정적 피해까지 감안해서 월급을 더 받는 거라고 위로하듯 선배들이 얘기해 주었지만 사실 겉으로만 "네.'라고 했을 뿐 -

그 어느 누구의 위로도 나에게 힘이 되진 않았다.

그리고 점심시간.

밥도 넘어가지 않아 한참을 운 것 같다.


이제 사회생활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 이번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었는데 -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서운 것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내가 베푼 친절이 결코 똑같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


적당한 친절, 적당한 미소, 적당한 업무능력.

내가 이 정도 했으니 상대도 나에게 이렇게 해줄 것이란 기대조차 들지 않도록 마음을 바꿔먹었다.


물론, 업무를 하며 손녀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친할머니 생각이 나서 이따금씩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매일 다양한 고객들을 마주하며 울다가 웃다가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책 제목도 있던데 -

난 매일 내 기분과 감정에 널뛰기를 하며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