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할 수 있을까
3화. 내 오랜 연인 - 너에게 쓰는 편지
나의 삶에서 빼놓기 어려운 한 사람이 있다.
중 3 사춘기 시절부터 수십 번의 면접을 뚫고 이직에 성공했던 나의 그 어려운 순간까지도 함께했던 사람.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군대며 삼수까지 그 긴 시간들을 어떻게 기다렸냐고 신기해하며 물어본다.
어릴 때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그런 반응에
나 스스로가 특별한 여자인가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나도 그를 기다린 적 없다.
그냥 우린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마음만은 늘 함께했다.
그래서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는 힘들거나 괴로운 순간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고 싶을 때는 편지를 썼고
내 마음이 외롭게 느껴질 때는 일기를 썼다.
그를 처음 만난 건 , 너무 어렸던 14살.
처음 그 아이가 전학 왔을 때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다른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유치한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조용히 공부만 하는 모습에 멋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중학생이 갖기 어려운 진중하고 성숙한 모습이 그에게서 보이기도 했다.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가 그와 눈이 마주칠 때면 심장은 쿵쿵거렸지만 다시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내 신발만 쳐다봤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닌 내 주변의 거의 모든 친구들이 그를 좋아했다.
다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긴 채 그 주변에 맴도는 모습이 내 눈에는 보였기 때문에 나는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4월의 어느 날.
성우라는 친구가 나를 불러냈다.
"재혁이가 학교 1층에서 잠깐 보재. 나와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오렌지 사탕을 입에 물고
1층으로 향했다.
그는 계단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는 수줍게 얘기했다.
" 아.. 그게... 내가 여기로 왜 불렀냐면..
사실 내가 너 좋아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 질문에 나는 너무나도 해맑게
" 나? 좋게 생각해! "
아..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
왜 아무 생각 없는 애처럼 저렇게 말했을까.
그러고선 내일 C.A 시간에 다시 대답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후다닥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왔다.
뛰어나오면서도 사실 너무 행복하고 좋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기가 부끄러워 곧장 집으로 갔다. 하지만 내일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 친구 혜리는 재혁이를 좋아했고 재혁이 친구 우진이는 나를 좋아했기 때문에 선뜻 용기 내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던 나는 잠깐 쉬는 시간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사실 좋아해...
근데.. 우리가 사귀는 건 비밀로 했으면 좋겠어.
친구들 걱정이 되기도 하고, 또 짓궂은 아이들은 우리 보고 놀릴 수도 있잖아."
나는 친구들 앞에선 씩씩한 척했지만 수줍음도 많고 겁도 많은 아이였다.
버스에서 내려야 할 종착지를 앞에 두고 스스로 벨을 누르지 못해 여러 번 지나치기도 했다.
벨을 누르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것 같았고
그런 시선들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이와
사귀게 되다니 - 이 또한 마음의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용기를 내어
YES라고 대답했던 건 참 다행이었다.
그 사랑의 결말이 영원을 약속하는 결혼이든 혹은 이별이든 그와 함께 나눴던 11번의 따뜻한 봄이 내 삶에서 앞으로도 평생 경험하기 힘든 사랑을 그 친구와 했고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내 대답은 여전히 YES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