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감정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버릇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엄지와 검지 사이를 비비는 버릇이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생긴 버릇이다.
나도 모르게 늘 손을 비비적거렸고,
어느 순간엔 굳은살이 박이기도 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의식해서 만든 동작도
아닌데, 어느 날 문득 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유치원 버스를 타고 엄마와 떨어지던 순간,
시험지를 앞에 두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던 날,
처음으로 엄마 없이 집에 혼자 남겨졌던 날,
늘 그 자리에 내 손이 있었다.
작고 반복적인 몸짓은 나를 안심시키는 유일한 언어였다.
“왜 자꾸 손을 그렇게 해.”
“손에 굳은살 박이잖아, 그만 좀 해.”
엄마는 늘 나에게 잔소리했다. 정말로 굳은살이
박히고, 때론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그게 위로였다.
그 버릇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문득 발견하곤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몸짓이나 물건을 통해
불안이나 긴장을 조용히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낸다.
내 아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 옆 살을 뜯는 아이도 있었고,
머리카락을 베베 꼬는 아이,
애착 이불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 손톱 물어뜯었네…”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다가 말했지만,
내 말투에 스스로 놀랐다.
예전의 내 엄마처럼 딱딱한 말이 툭 튀어나온 거다.
아이의 손톱은 울퉁불퉁한 톱 같았다.
무얼 그렇게 삼키고 있었던 걸까.
나는 아이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그거, 아무 때나 나오는 거 아니잖아.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더 그러지 않아?”
아이는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그래.
마음이 막 답답할 때, 손이 먼저 움직였어.”
“그래도 자꾸 물어뜯으면 손톱이 못생겨진대.
그러니까 뭔가 긴장될 땐 심호흡을 해보자.”
아이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 침묵이 오히려 고맙다고 느꼈다.
어른이 보기엔 사소한 버릇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그 나이로는 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마음에 말을 꺼내는 것이 아직 서툴렀기에,
몸은 이미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다.
조그만 손끝, 헝클어진 머리카락, 낡은 이불 하나가
말보다 더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땐 전혀 몰랐다.
그게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는 걸.
그저 손이 심심해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건 내 감정의 신호였다.
말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솔직했다.
입 밖으로 괜찮다고 말해도,
내 손은 이미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손을 비비적거렸고,
그건 ‘괜찮지 않다’는 내 안의 고백이었다.
말로 하지 못하고 마음에 숨어 있던 감정이
몸을 통해 먼저 드러나는 순간들.
나는 늘 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해 왔던 것 같다.
말은 늦었고, 몸은 늘 앞서갔다.
감정을 감추는 법은 일찍 배웠지만, 말하는 법은
끝내 익히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작은 행동이나 물건만으로도 감정을
해소할 수 있던 순간들이 사실은 행복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야 알아버렸다.
사소한 몸짓이나 물건 하나로
더 크고, 더 거센 것들을 이겨내기에는
결국 역부족이었다.
작은 버릇 하나로는 어른이 되어버린 감정을
다 붙들 수 없었다.
감정은 커졌고, 버릇은 그대로였으니,
어느 순간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받아주던 그 작은 버릇들이
나를 얼마나 깊이 위로하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작은 몸짓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말 대신 몸이 먼저 살아낸 시간들,
그건 단지 버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조용하고 치열한 방식이었다.
말로 꺼낼 수 없던 마음들이 지나간 자리엔,
굳은살과 기억만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전
손의 반응을 먼저 살핀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 감정은,
언제나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진실이었다.
어릴 적부터 몸으로 드러났던 나의 감정을
누군가 단 한 번이라도 다정하게 토닥여주었더라면,
내 손의 굳은살은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굳은살을 남기지 않기를.
그 작은 마음 안에 말랑함만 남아, 감정을 편히
표현하며 살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조용히 굳은살이 생겨
더는 쉽게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에게는 부드러움을, 나에게는 단단함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익숙한 버릇 속에 감춰진 마음의 소리를,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