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감정과 몸 사이 어딘가

9.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감정

by Woo Seol Hwa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버릇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엄지와 검지 사이를 비비는 버릇이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생긴 버릇이다.

나도 모르게 늘 손을 비비적거렸고,

어느 순간엔 굳은살이 박이기도 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의식해서 만든 동작도

아닌데, 어느 날 문득 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유치원 버스를 타고 엄마와 떨어지던 순간,

시험지를 앞에 두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던 날,

처음으로 엄마 없이 집에 혼자 남겨졌던 날,

늘 그 자리에 내 손이 있었다.

작고 반복적인 몸짓은 나를 안심시키는 유일한 언어였다.


“왜 자꾸 손을 그렇게 해.”

“손에 굳은살 박이잖아, 그만 좀 해.”

엄마는 늘 나에게 잔소리했다. 정말로 굳은살이

박히고, 때론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그게 위로였다.


그 버릇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문득 발견하곤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각자의 몸짓이나 물건을 통해

불안이나 긴장을 조용히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은 본능적으로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낸다.


내 아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 옆 살을 뜯는 아이도 있었고,

머리카락을 베베 꼬는 아이,

애착 이불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 손톱 물어뜯었네…”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다가 말했지만,

내 말투에 스스로 놀랐다.

예전의 내 엄마처럼 딱딱한 말이 툭 튀어나온 거다.


아이의 손톱은 울퉁불퉁한 톱 같았다.

무얼 그렇게 삼키고 있었던 걸까.

나는 아이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그거, 아무 때나 나오는 거 아니잖아.

불안하거나 긴장될 때 더 그러지 않아?”

아이는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그래.

마음이 막 답답할 때, 손이 먼저 움직였어.”


“그래도 자꾸 물어뜯으면 손톱이 못생겨진대.

그러니까 뭔가 긴장될 땐 심호흡을 해보자.”

아이는 말이 없었고, 나는 그 침묵이 오히려 고맙다고 느꼈다.


어른이 보기엔 사소한 버릇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그 나이로는 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마음에 말을 꺼내는 것이 아직 서툴렀기에,

몸은 이미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다.

조그만 손끝, 헝클어진 머리카락, 낡은 이불 하나가

말보다 더 정확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땐 전혀 몰랐다.

그게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는 걸.

그저 손이 심심해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건 내 감정의 신호였다.

말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솔직했다.

입 밖으로 괜찮다고 말해도,

내 손은 이미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손을 비비적거렸고,

그건 ‘괜찮지 않다’는 내 안의 고백이었다.


말로 하지 못하고 마음에 숨어 있던 감정이

몸을 통해 먼저 드러나는 순간들.

나는 늘 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해 왔던 것 같다.

말은 늦었고, 몸은 늘 앞서갔다.

감정을 감추는 법은 일찍 배웠지만, 말하는 법은

끝내 익히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작은 행동이나 물건만으로도 감정을

해소할 수 있던 순간들이 사실은 행복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야 알아버렸다.


사소한 몸짓이나 물건 하나로

더 크고, 더 거센 것들을 이겨내기에는

결국 역부족이었다.

작은 버릇 하나로는 어른이 되어버린 감정을

다 붙들 수 없었다.

감정은 커졌고, 버릇은 그대로였으니,

어느 순간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받아주던 그 작은 버릇들이

나를 얼마나 깊이 위로하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작은 몸짓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었다.

말 대신 몸이 먼저 살아낸 시간들,

그건 단지 버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 만든,

조용하고 치열한 방식이었다.


말로 꺼낼 수 없던 마음들이 지나간 자리엔,

굳은살과 기억만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전

손의 반응을 먼저 살핀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 감정은,

언제나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진실이었다.


어릴 적부터 몸으로 드러났던 나의 감정을

누군가 단 한 번이라도 다정하게 토닥여주었더라면,

내 손의 굳은살은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굳은살을 남기지 않기를.

그 작은 마음 안에 말랑함만 남아, 감정을 편히

표현하며 살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조용히 굳은살이 생겨

더는 쉽게 다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에게는 부드러움을, 나에게는 단단함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익숙한 버릇 속에 감춰진 마음의 소리를,

나는 이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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