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무 일 없는 척, 그 고단함
학창 시절 아침에 종종 엄마와 다투고 학교를 가곤
했었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변하는 아침이 나는
너무 싫었다.
엄마와의 작은 말싸움 하나가 온종일 날 따라다녔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자꾸만 집에 묶여 있는 듯했고, 친구들과 웃으면서도 속은 편치 않았다.
아침의 공기가 하루 전체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이
어린 나에겐 버거웠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나는 활기찬 척을 했다.
눈은 반쯤 감기고, 컨디션은 아침부터 바닥으로
떨어져 있어도 내 아침은 밝게 시작되어야만 한다.
아이를 깨우고, 남편의 아침을 챙기면서 업된 목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공주님~얼른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아침 먹어요~“
내가 아침부터 쳐져 있으면 그들까지 지친 하루를
보낼까 봐, 그들의 하루가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겹게 활기를 내본다.
아이 쪽에서 짜증을 부릴 때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내 하루까지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술렁술렁 넘긴다.
드디어 그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나면 홀로 남은 나는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아휴.. 끝이다.”
아침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내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의 일을 도우러 가는 날이나, 약속이 있는 날엔 괜히 여유 있는 척, 재미있고 밝은 사람인 척을 한다.
손님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는 동안, 나는 더 활기차게 목소리를 높인다. 몸은 피곤한데도 괜히 웃음을 덧붙이고, 대답도 크게 한다.
상대의 하소연을 들어주다가, 같이 공감하기 위해
나 또한 괴롭고 힘든 척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왜 인간은 서로의 행복보다 고통을 나누는 것에 더 깊은 유대감을 갖는 걸까.
웃음보다 한숨이 더 빨리 퍼지고, 자랑보다 하소연이 더 쉽게 이어진다. 그 무게를 나누는 순간에야 비로소 서로 연결된다는 착각을 안겨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면 아이의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는 빨리 해치우고 서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삼키며, 남은 집안일을 해치운다. 아이는 공부방과 거실을 하염없이 오간다.
숙제만 하면 왜 목이 마르고 간식이 먹고 싶은 걸까.
다그치고 싶은 마음과, 참아야 한다는 마음이 부딪히며, 가슴속에서 작은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결국 나는 좋은 엄마처럼 보이고 싶어서 또 아이와 부딪히기 싫어서, 결국 다시 한번 ‘척’을 선택한다.
그러나 태연한 척을 해도 불안과 조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쌓여 결국 나만 지쳐간다.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가서 숙제해.”
결국 터져 나온 한마디를 오늘도 참지 못했다.
때론 내 마음속 깊이 담겨 있는 과거를 다 잊은 척하기도 하고, 그 일에 상처받지 않은 척하기도 한다. 한없이 나약한 나 자신을 숨기기 위해 강한 척도 하고, 같이 있어도 마음이 너무나 공허할 때 외롭지 않은 척도 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
마음이 지옥 같아도 아무 일 없는 척.
안 무섭고, 안 힘들고, 안 아프고, 안 지친 척.
척은 내 하루를 가득 채우는 또 다른 얼굴이다.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엔
내 숨을 막는 무거운 갑옷 같기도 하다.
나만 이런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물론 나란 사람이 타인에게 비치는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실이라는 토대 위에
‘척’을 얹었을 뿐이니까.
결국 나의 진실된 모습과 진솔한 생각을 아는 사람은 나 자신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산다고 생각한다.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속으론 흔들리고,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은 울고. 그것이 거짓이라기보다, 서로를
지켜내기 위한 작은 장치일 뿐이겠지.
나 역시 그 작은 장치에 기대어 하루를 버틴다.
때로는 숨고, 때로는 꾸며내지만, 결국 그 안에는
진짜 내가 있다. 언젠가는 조금 더 솔직한 얼굴로
살아가고 싶지만, 지금의 나 또한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버티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은 오늘 어떤 ‘척’을 하며 살아내고 있는지,
그 척 뒤에 숨은 진짜 얼굴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얼굴을,
당신 스스로는 알아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