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참을수록 아픈 건 마음이 아니라 위장
어릴 땐 누워서도 과자를 먹는 아이였다.
눈 뜨자마자 배고프고, 눈 감을 때까지 먹는
속이 편한 게 당연했던 시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과식도 안 했는데 소화가
안 되고, 조금만 긴장해도 배가 아팠다.
미묘한 복통과 소화불량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 년 넘게 이어졌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점점 뚜렷해졌다.
예전처럼 무시할 수가 없었다.
혹시 큰 병은 아닐까 싶어 병원을 찾았다.
차가운 의자에 앉아 의사의 눈치를 보며
결과를 기다렸다.
검사도 여러 번 받았지만, 돌아온 말은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대신 붙은 이름은 ‘신경성’.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병원 쇼핑을 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병들었다는 말.
그 말이 더 속상했다.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는 뜻처럼 들려서,
차라리 위염이나 장염이라는 병명이 낫겠다 싶었다.
내 안에 쌓인 말들이,
모두 위장에 고여 있었던 걸까.
나는 무슨 걱정을, 무슨 신경을 그렇게나
많이 쓰고 있었던 걸까.
‘그럼 진짜 문제는 어디 있는 걸까.’
‘왜 나는 몸으로 고통을 말하는 걸까.’
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많은 걱정과 불안이 쌓여 내 몸을 아프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감정이 위장을 조이고, 마음이 소화를
방해할 수 있다는 건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음은 마음대로, 몸은 몸대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속이 안 좋을 땐 약을 먹고, 음식을 탓했지.
“내 마음이 소화되지 않아서”라고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음이 부산스러운데, 몸까지 고단해지니
사는 건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하나라도 편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매일 했다.
‘감정이 많은 게 아니라, 그냥 예민한 사람일까.‘
‘왜 나는 마음도 모자라, 몸까지 말썽일까.’
절망만 가득해진 나는 그저 조용히,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를 더 괴롭혔던 건,
내 몸은 이토록 아프고 힘든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이었다.
“이상 없다잖아~ 근데 왜 자꾸 그래?”
“검사 다 괜찮다면서. 신경 쓰지 마.”
‘신경성’이라는 말은,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꾀병’과도 같았다.
진단은 있지만 설명은 없고, 병명은 있지만 이해는
없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난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입덧에 시달렸다.
물조차 마실 수 없었고, 냄새만 맡아도 토했다.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어도 속이 울렁거렸다.
기운이 없어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가만히 누워 있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임신 중인데도 체중이 계속 빠졌고,
기운은 점점 바닥으로 꺼졌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울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임신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처럼 느껴졌다.
그 시기에 아는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 상태로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가지 못했고, 그 동생은 서운했을 것이며
그 마음을 나에게 표현했다.
나는 그저 “미안해”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아마도 가기 싫은 변명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날도 나는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동생도 아이를 가졌다.
한동안 연락도 없던 그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언니, 나 입덧이 너무 심해.
이제야 언니 마음을 알 것 같아.”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끝내 이해받지 못할 줄 알았던 마음을
뒤늦게나마 건네받은 것 같았다.
겪어보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말 몇 마디로는 누군가의 진짜 고통에 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사이는 아무 사이도 아니고,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에게는 진짜 감정이 없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아픔은 결국 혼자만의 것이다.
그걸 이겨내는 것 또한 스스로의 몫이다.
몸이 고장 날 만큼, 마음이 오래 참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제대로
느껴지고, 받아들여지기만 해도 몸은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한다는 것도.
이제 나는 아프다는 말을 조금은 덜 미안한 얼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 먼저 말하는 이유도, 감정을 오래 삼키면 결국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적어도 내 마음과 몸에게만큼은 그럴싸한 이유 없이 아프다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