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감정형 인간 생존중입니다.

14. 실로 엮은 나의 감정들

by Woo Seol Hwa

내가 처음 뜨개질을 배운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아는 동생이 배우고 싶다고 찾아간 공방에 나를 끌어들였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실을 잡아보게 되었다.


“언니, 그냥 와봐. 생각보다 재밌어.”

동생의 말에 반쯤은 억지로 끌려갔는데, 공방 안에는 알록달록한 털실과 여러 작품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두툼한 실, 얇은 실, 파스텔 톤부터 선명한 색까지. 그 풍경만으로도 잠시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손에 익지 않은 바늘을 잡는 순간, 묘하게 긴장되면서도 마음 한쪽이 설레었다.

바늘과 실을 쥔 손가락은 아프고 떨렸지만, 바늘 끝이 실을 엮어내어 무늬를 만들 때마다 내 안의 긴장도

한 가닥씩 풀리는 것 같았다.

무늬를 한 줄 한 줄 쌓아 올리며 오랜만에 나를 위한

시간이 찾아온 듯했다. 오직 실과 바늘만이 내 시계를 움직이고 있었다.


낯선 공간과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를 원래는 꺼려했지만, 육아에 지친 나는 숨 쉴 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곳은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그저 뜨개질만 열심히 해도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옆에 앉아 장난감을 만지거나 남은 실을 가지고 놀았고, 우리는 그 사이사이 바늘을 움직였다. 배냇저고리 이후 처음으로 아이 옷을 직접 떠 보았고, 가방과 모자도 만들었다.


반복되는 육아 속에서는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뜨개질만큼은 매일 눈앞에 작은 성취를 쌓아주었다


“엄마, 이걸로 뭐 만드는 거야?”

“응, 이 실로 우리 딸 옷 만들어 주려고.”


아이의 눈빛에서 신남이 번졌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는 내 옆에서 한참 동안 뜨개질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아이도 나를 보며 예전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순간, 엄마를 바라보던 어린 나의 눈빛과 지금

내 아이의 눈빛이 겹쳐 보였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엄마가 뜬 하얀색 뜨개 레이스

덮개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티브이 위, 전화기 밑,

냉장고 위까지. 먼지가 쌓일 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엄마의 코바늘 작품이 자리했다. 그때 나는 옆에서

엄마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어린 마음에 엄마가 멋져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늘 뜨개질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직접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 시절 엄마 옆에서 보던 뜨개의 무늬들은 내겐 늘

비밀스러운 암호 같았다. 어떻게 저 많은 코들이

얽히고설켜 저런 무늬가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신비함 때문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시작한 뜨개질의 세계는 손을 움직이며

잡생각을 잊게 해 주는데 탁월했다. 뜨개질을 할 때는 한 코 한 코가 중요하다.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모양을 바꾸기도 한다. 코가 빠지거나 뜨개법을 틀리면 몇 번이고 풀어야 했다. 그걸 알아차렸을 땐 이미 몇 줄을 떠버렸거나, 심지어 거의 다 뜬 뒤일 때도 있었다.


풀어내는 순간은 언제나 짜증 나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야 만 제대로 된 무늬가 완성된다는 걸

알기에, 결국 다시 바늘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내 감정도 그랬다. 흔들릴 땐 엉망 같아도, 다시 이어가다 보면 어쩐지 삶이 조금은 단단해졌다.

내 안의 고집과 끈기가 조금씩 자라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건 억누르는 게 아니라, 풀어내고 다시 이어가는 과정을 견디는 일이라는 걸 뜨개질이 가르쳐주었다.


엉망 같던 마음도 언젠가 하나의 무늬가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감정들이 모여 결국 지금의 나라는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던 뜨개 작품들이 결국 집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던 것처럼, 내 감정들도

내 삶의 구석구석을 덮어주고 있었다.


“그게 바로 뜨개질의 효능이야. 아무 생각 안 드는 거. 이 뜨개질을 할 때 뇌파가 명상할 때 뇌파랑 비슷하대요. 한 마디로 손으로 하는 명상이다, 이거지.”

— 드라마 〈미지의 서울〉(tvN, 2025),

극본 이강 작가


손으로 하는 명상.

나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 찾아내고야 말았다.

갖가지 잡스러운 감정들을, 실처럼 풀어내고 다시

엮어내는 법을.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마침내 내 마음에도 하나의

무늬가 피어오르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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