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감정형 인간 생존중입니다.

13. 쉼은 멍하니 오는 것

by Woo Seol Hwa

컨디션이 바닥까지 내려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명상에 관한 유튜브를 발견했다. ‘마음 챙김 명상‘이라는 이름이었다.

‘마음 챙김이라고? 명상을 하면 마음이 챙겨진다니.’

제목에 끌려 나도 ‘명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상은 뭔가 어느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제목에 끌린 건 나도 자신을 다스리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정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던 매일에서 벗어날 작은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나의 호흡,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라고 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자만하던 내 생각은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들숨 날숨은커녕 머릿속에는 자꾸만

잡생각이 들락날락했다.


저녁 반찬은 뭘 해 먹어야 할지, 아이 숙제는 챙겼는지, 지나간 대화 속에서 괜히 후회되는 말은 없는지. 명상 중에도 삶은 내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흘러 다녔다.


‘내가 하는 생각을 바라보라’고 했다.

그저 물 흐르듯, 내가 하는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라고.


호흡에 집중하다가, 또 내가 하는 생각을 바라보다가… 결국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어쩜 이리 단 한 시도 쉬지 않고 잡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심지어 과거 어느 날의 기억까지 끄집어내는 게 바로 명상의 시간이었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그날 처음 실감했다. 감정형 인간에게 마음은 늘 차오르고 흘러넘치는데, 그걸 비우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잡생각이 쏟아져서 실패 같았지만, 그걸 통해 내가 늘 얼마나 많은 생각에 휩싸여 사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나의 뇌를 조금 쉬게

하고자 노력했다.


“엄마, 눈 감고 뭐 해?”

“명상하는 거야. 뇌를 비우는 거지. 너도 같이 하자.”

“너랑 나처럼 온갖 감정에 휩쓸려 사는 사람들은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필요해.”


잘 되지도 않는 명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면서 아이를 끌어들였다. 아이는 내 옆에서 나와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어때? 머리가 좀 비워지는 것 같아?”

“아니… 근데 비워지진 않는데 마음이 편해져.”


아이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아이가 느낀 그 솔직한 대답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었다. ‘비워지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편해지면 되는 거구나.’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그 한마디가, 어렵게만 느껴졌던 나의 명상을 조금 내려놓게 만들어 주었다.


“명상이 어려울 땐 우리 그냥 멍 때려보자.”

“멍 때린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는 말의 신조어란다. 그 단순한 말속에,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던 쉼의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라, 늘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난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하기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지고 일어나길 반복할 뿐이었다.


어쩌면 감정은 억누르거나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잠시 자리를 내어주고 쉬어가게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명상이라는 말보다 그저 멍 때리며 흘러가는 순간에 감정도 나도 조금씩 가라앉는 게 아닐까.

내가 찾던 명상은 대단한 기법이 아니라, 이렇게 ‘멍 때리는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내 삶을 지탱하는 건 완벽한 평온이 아니라, 그저 잠시 머무는 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만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빗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을 채우던 잡생각이 빗물에 실려 흘러가는 듯했다.

아무 무늬도 없는 흰 벽과 눈싸움을 하듯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차오르던 감정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 순간들은 명상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거창한 깨달음도, 완벽한 고요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작은 것에 집중하며 잠시 멈춰 서는 일,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충분히 쉬어갔다.

호흡을 세지 않아도, 꼭 눈을 감지 않아도, 일상의 사소한 틈이 곧 나만의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흔들려도 괜찮다.

멍하니 쉬어가는 그 잠깐의 틈이 결국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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