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 가지 색의 두근거림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는 놀람과 설렘,
그리고 불안이 뒤섞인 복합적인 리듬이다.
누군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오래 기다린 연락이 도착한 순간,
혹은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 선 순간.
감정은 서로 다른 색을 띠지만, 심장은 그것들을
구분하지 못한 채 같은 박동으로 반응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랐다.
다른 사람의 재채기 소리에도, 창밖의 경적에도,
심지어 아빠의 방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어린 시절 내 심장은 늘 ‘덜컹’ 거리며 반응했다.
그렇게 놀라며 자라온 나는, 세상이 언제나
갑작스러운 소리와 사건으로 가득하다고 믿었다.
겉으론 조용해 보였지만, 안쪽에서는 작은 ‘덜컹’들이 끊임없이 부딪히며 울리고 있었다.
스무 살 즈음, 나는 처음으로 설렘이라는 두근거림을
알게 되었다.
“나 너 좋아해. 우리 만나볼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서 느끼는 가슴 떨림은 손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고 몸을 로봇처럼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난 그 사람을 참 많이도 좋아했었다.
사소한 눈빛 하나, 짧은 문자 하나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달뜨곤 했다.
그때의 내 심장 소리는 ‘콩닥콩닥’이었다.
처음 알게 된 콩닥거림은 내 안의 새로운 언어 같았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진실하게,
눈빛보다 더 분명하게,
심장이 먼저 대답해 주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돌아보면, 나에게 덜컹과 콩닥콩닥은
사치였다. 놀람과 설렘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처럼
드문드문 나타날 뿐이고, 지금 내 삶을 지배하는
리듬은 ‘철렁’이다.
나는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장이 쑥 내려가는 그 기분이 너무 싫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두근거림은 그것보다도 더 무겁다.
아이를 갖고 나서부터 내게는 설렘보다 불안이 컸다.
고된 입덧 때문이었을까. 열 달 동안 혹여나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늘 불안에 시달렸다.
아이를 낳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 심장은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손끝이 얼어붙고,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아이의 기침 소리 하나에도 가슴은 먼저 움츠러들었다.작은 열에도 혹시 큰 병은 아닐까. 나쁜 상상을 밀어내려 애써도, 심장은 이미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었다.
철렁거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나를 탓했다.
‘내가 더 단단했더라면, 내가 더 긍정적이었더라면.’
하지만 심장은 늘 솔직해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휘감았다.
“안녕하세요~어머니.”
학교나 학원에서 걸려오는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도
심장은 철렁 내려앉는다.
수화기 너머 첫 숨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길래 이 시간에 전화가 오지?’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별일 아니라는 말을 들어야 겨우 마음이 풀린다.
어쩌다 내 삶의 두근거림이 불안이 되어버렸을까.
남은 인생과 건강, 돈, 아이, 남편까지…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놓여 있다.
그것이 나를 늘 불안에 빠뜨린다.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는 혼자가 아니기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짐을 나누다 보니 안정보다 불안이 더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이렇게까지 불안을 느낀다는 건,
여전히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중하지 않았다면 심장은 굳이 철렁거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대로 철렁거리는 심장을 내버려 두어도 괜찮을까.
언제든 꺼져버릴 수 있는 이 심장을 다른 리듬으로
뛰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다시, 이유 없는 설렘이 찾아와 콩닥거리게 될 날이 올까.
아마 나를 다시 콩닥거리게 할 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완벽한 미래가 아닐 것이다.
아이의 웃음처럼 사소하고, 따뜻한 햇살처럼 분명한
그 작은 진심들이, 멈췄던 나의 시간을 다시 뛰게 할
새로운 박자가 되어줄 것이다.
내 소중한 것들이 안전하게 지켜지기를.
그리하여 내 남은 인생이 철렁 이 아닌 콩닥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그 작은 기적을 다시 만날 용기.
지금, 내 심장은 어떤 대답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