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흩어진 생각이 문장이 될 때
나는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지금처럼 보고, 듣고, 경험할것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든 만화책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교과서보다 낡은 소설책과 빌려온 만화책이 책상 위에 뒤엉켜 있었고, 침대에 종일 엎드려 책을 봤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풍기는 책 냄새와 감촉이 좋았다. 손끝에 스치는 종이는 거칠었고, 책장의 오래 묵은 종이 냄새가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덕분에 국어 성적은 꽤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여러 아이디어가 뒤죽박죽 쏟아지는 것에 비해,
그것을 글로 정리하는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글 쓰는 일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특출 난 재능이 있거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 그래서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쓰는 건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남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배우고 존경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 세계의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감탄하며 바라보지만, 들어갈 수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은 점점 꼬여만 갔고,
정리가 되지 않을 때마다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 생각을 붙잡는 버릇이 생겼다. 어떨 때는 잊지 않기 위해,
또 어떨 때는 잊어버리기 위해 메모를 썼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한 말들이 그 작은 화면 안에서만 쌓여 갔다. 메모장은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오직 나만의 배출구였다.
가끔 메모장을 주르륵 훑다 보면, 어떤 메모는 여전히 유효해서 지금의 나를 다시 위로해 주고, 어떤 메모는 이미 지나간 마음이라서 지금은 웃으며 볼 수도 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그런데 지금의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짧은 문장
몇 개에 담겨 있는 지난날의 기록은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가만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과거의 나에게 달려가고 싶어질 때도 있다.
“다 부질없는 고민이라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다 지나가게 될 거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 또한 미래의 나에게는 답답한 감정 덩어리일 뿐이겠지. 결국 우리는 언제나 미완의 존재로 남아 있으니까.
이렇게 글쓰기로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의든 타의든 글쓰기를 하며 살았다. 방학 숙제로 일기도 쓰고, 친구들과 교환일기나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독서록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린 시절의 정리되지 않은 문장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니까. 서툰 글씨로 적힌 일기장을 펼치면 그날의 내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그때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그날의 공기가 함께 묻어 있었다.
“그래, 글을 써보자.”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나도 위로받고 누군가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의 공기와 마음도, 훗날 다시 이 글을 펼쳐 읽을 때 용기가 되어 나를 찾아와 주겠지.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
— 온유, 《쓰기의 말들》
온유님의 글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내 품을 내어주고 싶어졌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등불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자리를 살아가지만, 고통의 모양은
의외로 닮아 있다. 내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음이 오히려 진짜 삶과 닮아 있으니까.
그렇게 한 줄 한 줄 적어 나가는 동안, 나는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작은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 글쓰기는 결국, 내가 삶을 살아가는 기록이면서도 누군가와 조용히 연결되는 다리가 된다.
그 다리를 건너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덜어내고, 각자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잠시라도 그 다리 위에 앉아 함께 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