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감정은 나의 기본값

2. “왜 이렇게 예민해?”가 제일 싫은 말

by Woo Seol Hwa

나는 늘 예민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별일 아닌 걸로 걱정하고,

남이 말 안 해도 분위기 먼저 느끼고,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그게 왜 그렇게 문제였을까.

누군가를 향해 날을 세운 적도 없고,

불편함을 주려 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조용히, 내 마음을 다스리느라 애썼을 뿐인데.


나는 나에게만 예민했다.


조금만 무뎌지면 스스로를 다그쳤고,

마음이 흔들릴까 봐 미리 긴장했고,

그렇게 나를 조였다.

그래서 말 한마디 꺼내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열 번쯤 돌려본 적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단어를 너무 쉽게 꺼낸다.

“예민하긴~”

“너 원래 좀 그런 성격이잖아.”

“쟨 예민해서 무슨 말을 못 하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잘못된 감정 같은 사람이 된다.

조심스럽게 꺼낸 불편함, 슬픔, 서운함.

하지만 “예민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것들을 덮어버릴 때,

그 감정은 더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부터 나는 감정 하나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 앞에서 다시 침묵하는 사람이 된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너그럽다고 느낄까.

아니면 남의 마음을 들여다볼 힘이 없어서

그냥 편하게 정리해 버리는 걸까.


나는 지금도 그 말이 무섭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에 상처받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 나에게 자주 말했다.

“야, 너무 말랐다. 살 좀 찌워. 징그러워.”

“젓가락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들.

“살만 조금 찌우면 예쁠 텐데.”

“남자들은 마른 여자 안 좋아해.”

“넌 그냥 그래. 딱히 예쁜 얼굴은 아니지.”

“넌 어디는 괜찮은데 여긴 별로야.”


그 말들은 무심하게 툭 던져졌고,

나는 무표정하게 들었다.

아닌 척하면서도,

나는 그 말들이 내 몸 어딘가에 박히는 걸 느꼈다.

꾹꾹 눌러써서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글씨처럼

그 말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에 자국이 남았다.

들은 사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말한 사람은

아마 기억도 못 하겠지.


누군가가 나를 한 줄로 요약하려 할 때,

나는 그냥 조용히 있었다.

속으로는 울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 참았다.


“그 말을 하는 당신은 완벽한가?”

“당신이 한 말을 내가 그대로 돌려준다면 당신은

예민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 말조차 하지 못한 채로.

왜냐면, 너무 잘 아니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어떤 눈빛이 돌아올지,

어떤 분위기가 흘러갈지,

그걸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은 조용해지는 법이다.


나는 그저, 그 평가들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누가 내 안에 들어와

나보다 먼저 나를 평가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나보다 먼저 나를 깎아내리고,

나보다 먼저 나를 부족한 사람이라 말하던 그들처럼.


이제야 조금씩 묻는다.

나는, 그렇게 말해도 되는 존재였을까?

예민하게 만든 사람은 없고

예민해진 사람만 남은 그 자리에서

나는 또 예민한 내 자신을 탓했다.


“너 예민하다”는 말보다 더 아픈 건

내가 그 예민함을

끝끝내 나 혼자 감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는 예민함을 자꾸 숨기려 했다.

하지만 성격을 바꾸는 건 그리 쉽지 않기에

인정하게 된 것 같다.

인정이 아니라, 그냥… 포기 비슷한 거.


그래서 이제는 예민함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내가 예민해서 사람들의 표정 변화를 빠르게 알아채고,

작은 말투의 떨림에서 진심을 읽어내며,

상대가 미처 말하지 못한 슬픔까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날들이 있었다는 걸.


그건 분명, 단점이 아니었다.

나는 예민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 예민함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에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예민한 게 아니라,

조금 더 많이 느끼고 반응하는 사람일 뿐이다.

조금 더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가 뭐라 해도, 그건 나한테 중요한 감정이다.

더 조심스럽고,

더 깊이 감정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오늘도

그 말 앞에서 주춤할지라도

조금은 더 단단한 마음으로 말하고 싶다.


“나, 예민해.

그래도, 그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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