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감정은 나의 기본값

4. 감정이 많다고 감정에 취한 건 아니야

by Woo Seol Hwa

감정이 많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문득, 수많은 감정 속에서 내가 어떻게

감정을 줄이며 살아왔는지, 왜 감정을 누르며

살아야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감정이 많다’는 말이 비난처럼 들릴 때가 있다.

슬퍼 보인다는 말이, 예민하다는 말이, 감정적이라는 말이 모두 나를 ‘불안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낙인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감정이 많다고 감정에 취한 건 아니라고.

내 감정에 취해 다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감정이 크다는 건, 그만큼 오래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슬픔은 쉽게 떠나지 않고, 기쁨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작은 상처에도 크게 아파하고, 작은 위로에도 오래 고마움을 느낀다.

마치 공기의 변화를 먼저 알아차리는 예민한 후각처럼, 내 마음은 아주 작은 온도차도 놓치지 않는다.

감정은 내게, 세상의 온도를 감지하는 체온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 많은 나를 나 스스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면서 아이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라고 말하게 됐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가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길 바라왔다.

흥이 많고, 눈물이 많고, 춤과 노래에 감정을 담고 싶어 하는 아이.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학교 방송 장기자랑에 나가고 싶어!”

“네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지만 나중에

괜히 나갔다고 창피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


자유롭게 표현하라 말했던 나는 슬프게도 부모로서 때때로 그 감정을 ‘세상 앞에서는‘ 보여주지 않길 바란다.

‘혹시 상처받을까 봐, 혹시 너무 기뻤던 마음이 돌아오는 조롱으로 바뀔까 봐.’

내가 이미 겪은 세계를, 아이는 모르고 있어서 더 걱정됐다.

너무 순수한 마음이, 너무 빨리 상처받는 걸 몇 번이나 봤으니까.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건 하게 해 줘야지~

스스로 해본다고 하는 게 기특하잖아.”

“그런 것도 다 경험이지 왜 못하게 해”


하지만 난 내 아이가 재능이 있는 아이가 아닌걸

냉정하게 알고 있고, 감정은 많지만 눈에 띄는 결과가 없는 사람에게, 세상이 얼마나 빨리 등을 돌리는지 보아왔다.


사람들은 감정이 솔직한 시절을 중2병이라 비웃지만, 나는 그때가 가장 진짜였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던 유일한 시절.


감정 표현이 많은 사람은 세상 앞에서 쉽게 웃음거리가 되어버린다.

요즘은 감정에 솔직한 모습조차 ‘오글거린다’는 말로 쉽게 무시된다.

너무 기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감동한 모습은

곧바로 ‘과하다’는 말로 정리된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점점 더 부끄러운 일이 되어가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슬프다.

아무도 감정의 진심을 묻지 않는다.


아이에게 감정의 자유를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내 감정을 얼마나 허락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말해본다.

‘감정을 많이 느낀다는 건 혼자만의 감정에

취한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지금의 나 역시 드라마 한 장면에도 금세 울컥하고,

책 한 줄, 노래 가사 한 구절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누구에게 들킬까 두려워,

괜히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리게 되는 나이.

감정을 느끼는 건 여전한데, 표현은 점점 더 작아진다.


사람들 앞에서는 적당히 무던해야 하고,

적당히 담담해야 하고,

적당히 현실적이어야 하는 나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난 여전히 감정이 많다.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나는 늘 느끼고 있다.

웃는 얼굴 뒤에 살짝 흔들리는 마음,

농담 뒤에 숨은 외로움 같은 것들.


감정이 많다는 건,

그런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때로는 번거롭고,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감추는 대신

그 안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때로는 불편해도, 그게 내 마음을 속이지 않는 길이니까.


어느샌가 춤으로, 노래로, 글로, 또는 말로

각자가 가진 감정의 깊이를 가장 건강하게 바깥으로

꺼내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날이 오기를.

너무 빠르고 자극적인 세상 속에서 그 모든 감정들이

비웃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나는 감정에 취한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걸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감정이 많아서 괜찮은 거야.

그건 너를 깊게 살아가게 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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