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생일

by 휘유

오랜만의 글쓰기에 어떤 기억을 불러올까 하다가, 너무 오래된 기억보다는 최근의 기억을 불러오기로 한다.


9월의 마지막 날,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몇 살이냐고 묻는다면 서른한 살이라고 답하지만,

작년에 호주에서 29번째 생일을 보냈으니, 올해 생일은 서른 번째 생일이 맞겠지.


영원할 것 같던 20대가 지나가고, 이제 진짜 삼십 대가 되었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그전에 무언가 하나라도 이루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늘 조급했는데,

막상 삼십 대가 되고 보니 바람에 나부끼던 깃발이 바람이 멈추면 제자리로 돌아오듯,

흔들리던 마음들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나이가 들어서 편해진 것이라기보다, 그간 겪어온 여러 일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이겠지.

결국 그것도 나이 들며 얻은 선물이겠지.



생일의 시작

이제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나이지만, 생일 며칠 전부터는 괜스레 생일 당일이 기다려진다.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의미 있게 보낼까?'하고

일 년에 한 번뿐이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서른 번째 생일이니까.


올해 2월 말 호주에서 돌아와 방황 끝에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즉, 이제 막 3개월 된 신입사원이라 연차가 없다.

생일날 일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괜스레 일하기 싫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난 회사에는 반차 제도가 없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생일맞이 반차를 써보기로 했다.

그것도 전날 오후에 즉흥적으로.

"팀장님 내일 오후 반차 사용해도 될까요?"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감사하게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서른 번째 생일 계획이 시작되었다.

이번 생일의 콘셉트는 '몸과 마음의 건강.'



새벽 수련으로 시작한 하루

반차를 썼으니, 새벽수련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처음 시도하는 새벽 수련이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졸음과 피곤함이 두려워 시도를 못했는데,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하니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할 수 있지 않은가!


새벽 다섯 시, 눈 비비며 일어나 가볍게 양치와 세수를 하고 서울시 공용자전거 따릉이를 탄다.

요가원까지 15분 거리.

여름에는 밝은 시간이었는데, 가을이 되니 새벽녘의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리를 바삐 오고 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 활기에 힘입어 자전거 페달을 조금 더 힘차게 밟아본다.


자주 오고 가는 거리의 새벽 모습이 새삼 새롭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시간을 확인하니, 여유 있게 나왔는데도 촉박하다.

부리나케 따릉이 정류소를 찾아 세워두고, 요가원까지 후다닥 달린다.


30분의 호흡수련과 60분의 아사나 수련

요가원도, 선생님도, 수련방식도 모두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호흡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사바아사나 시간이다.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안전하게 몸을 활짝 열어내니 몸과 마음이 가볍고 맑아졌다.


'7시 40분입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충분히 사바아사나 하고 나오세요.'


10분만 누워있을까 하다가 출근 생각에 열 번의 호흡 후 몸을 일으킨다.

사바아사나 20분씩 하던 백수 시절이 그립다.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선생님의 따뜻한 제안에도, 출근을 위해 아쉽게 인사드리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새벽의 거리도 동이 트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다.


다시 따릉이를 타고 돌아가는 길,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생일날의 시작으로 새벽 수련을 선택하길 잘했다.



산뜻한 출근, 무거운 퇴근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했더니 마음이 산뜻했다.

하지만 신입사원의 하루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팀원분들의 축하 속에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작은 문제가 터져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니 오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괜히 반차 썼나...' 싶은 마음이 들 무렵,

문제는 다행히 잘 해결되었고 팀원분들의 배려 속에 무사히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석촌호수 러닝 그리고 헌혈

집에 돌아오니 진이 쪽- 빠져,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지 ~'라는 생각도 쏙-들어갔다.

간단하게 짜장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혈당스파이크가 온 건지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곤한 몸이 자연스레 침대로 향한다.


'30분만 자자.'

눈을 감은 지 3분 지난 것 같은데, 알람이 울린다.

'조금 더 잘까?' 싶다가도, 그래도 계획한 건 해야지! 하는 마음에 몸을 일으켜 세워본다.


다음 일정은 석촌호수 러닝과 헌혈

따릉이 타고 20분, 금세 도착한 석촌호수.


아직 배가 부르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본다.

석촌호수 러닝은 또 처음이라-! 걸을 때는 크게 느껴지던 호수가, 달리니 의외로 작다.

가볍게 3.5km를 달리고 헌혈센터로 향했다.


‘운동하고 헌혈해도 되나?’,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가보면 알겠지 싶어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부지런하게 움직인 효과가 있는 걸까?

검사 중 간호사 선생님이 묻는다.

“몸무게 45kg 넘으시죠?”

형식상 하시는 질문이겠지만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올 초까지만 해도 60kg 도달 직전이었거든요~!


헌혈이 이렇게 빨리 끝났던가? 벌써 끝났어요?라고 여쭤볼 만큼

짧고 순식간에 끝난 헌혈이었지만,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건강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카카오톡 알람이 울렸다.

호주에서 만난 대만친구, SIL에게서 걸려온 보이스 톡이다.

“Happy birthday!!!”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

역시 만담꾼답게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그동안 친구의 영어가 많이 늘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지구 반대편에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고 감사했다.


"Happy birthday my friend.

Remember that I always here whatever happens. "



하루 마무리는 새롭게 시작하는 배움으로

친구에게 받은 따듯한 마음 덕분일까,

헌혈 마치고 먹은 초코파이와 포카리 한 캔 덕분일까.

에너지가 다시 차오른다.


그렇게 석촌호수에서 집까지 다시 한 시간 남짓 또 걷는다.

이쯤 되면 문득 의문이 든다.

'이렇게 움직이는데, 왜 살은 안 빠지는 걸까.?'


저녁엔 법륜스님의 불교대학 첫 수업이 있었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이후, 법륜스님 법문 듣고 도움을 많이 받아 망설임 없이 시작했는데,

그 시작이 생일날이라니! 이 또한 특별하다.


마음 하나 잘 데리고 살면 못할 것이 없을 테니, 열심해 배워보기로-!


수업은 7시 반에 시작해 9시 반정도에 끝났는데, 마치고 나니 머릿속엔 오직 하나 — “뭐 먹지?"

다음 수업부터는 꼭 든든히 먹고 오리라.


집에 돌아와 고구마로 야식을 먹었는데 너무 과하게 먹었다.

속이 불편하다... 그래도 내 마지막 생일 선물이라며 스스로 합리화한다.


소화되지 않은 채 피곤한 몸을 뉘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속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참 편안하다.


서른 번째 생일의 의미

평범하디 평범한 하루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하루였다.


평소에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생일날이면 잊지 않고 축하 연락과 선물, 마음을 건네주는 친구들, 늘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이 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을 때면,

“친구 해줘서 고마워~” 하며 내가 더 마음을 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생일에는 기부도 하고, 헌혈도 하며 조금 더 나은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어디선가 들었다.

30대는 20대의 실수를 고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했으니, 그동안 고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바로 잡아가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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