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시선이 닿아야 피어나는 작은 움직임

by 휘유


연민이라는 주제에 대한 글감을 떠올리다, 문득 지난주 글방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연민 역시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같은 대상을 바라보며 어떤 이는 연민을 느끼고, 어떤 이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애순과 관식의 시선이 교차하는 장면.

‘자전거도 못 타면 평생 아궁이 앞에서 살다 죽는 거야’라며 자신의 딸 금명만큼은 꼭 자전거를 탔으면 했던 애순. 그런 애순의 마음을 알고 남편 관식은 프릴 달린 어여쁜 자전거를 하나 사 왔다.

애순은 좁은 아궁이 앞에서 불 피우며 자전거 타는 딸 금명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는다.

하지만 관식은 좁은 아궁이 앞에서 불을 피우며 고생하는 애순을 안쓰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같은 순간, 두 개의 다른 시선, 연민일 수도, 사랑일 수도 있는.

사랑과 연민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의 경험이 하나 떠오른다. 나를 향한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이 다름을 깨달았던 순간.

중국으로 교환학생 갔을 때의 일이다. 본과 유학생들과 함께했던 수업은 예상보다 훨씬 빡빡했다.

그곳의 한 수업은 ‘발표를 일정 횟수 이상하지 않으면 A+를 받을 수 없다’라는 규칙이 있었다. 아찔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발표 잘하는 친구들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내성적인 나는 잘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발표가 필수인 수업이라니. 하지만 여기는 중국, 재수강이 불가능 한 곳이다. 학점은 대학생에게 중요한 부분이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매수업, 요동치는 심장과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겨우 손을 들었다. 그렇게 안 하면 A+는 물 건너가기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내 안에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틀려도 돼. 아무도 너 신경 안 써. 지금 손만 들면 돼’하고 말이다. 그렇게 떨리는 손끝과 흔들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갔다.

한 학기가 끝났을 때, 한 친구가 조용히 다가와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언제나 자신감 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깜짝 놀랐다.

‘자신감 있게?’ 내 안에선 ‘나는 왜 이럴까.’ 하며 두려움과 불안으로 버텼던 순간들이며, 타인의 시선에 사로 잡혀 늘 동동거리며 사는 내가 가끔은 불쌍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당당한 사람’으로 비쳤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같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그동안 나 자신을 좁은 시선으로 가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끔 누군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때 불편했다.

괜히 내가 우월감 속에 있는 건 아닐까, 상대를 내 기준으로 가두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제 연민을 부정하지 않기로 한다.

그것도 누군가를 향한 작은 관심,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연민에 갇혀 나의 기준으로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것.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잔잔한 불안이 자주 찾아오고, 남들 앞에 서면 긴장하고, 가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친구의 편지처럼, 다른 누군가의 시선 속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 일 수 있다.

연민은 누군가를 향한 눈길이다. 시선이 닿아야 피어나는 작은 움직임이다.

어쩌면 연민은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용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 장면 속 다양한 시선처럼, 단면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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