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가지 요리를 좋아한다. 좋아해도 원하는 요리 방식은 서로 다르다. 남편은 쪄서 무쳐야 제맛이라고 우기고 나는 잔멸치 넣고 볶아야 맛있다고 받아친다.
선호하는 가지 요리가 있어도 해 주는 대로 잘 먹던 남편이 달라졌다. 얼마 전부터 가지를 볶아 놓으면 몇 번 깨지락거리다 만다. 후렴처럼 자기 어머니는 갖은양념으로 무쳐 주셨다는 말도 한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어머니 타령이다. 가지를 쪄서 무치고 싶다가도 울 엄마는···이라는 남편 말이 떠오르면 그러고 싶지 않다.
칼자루는 내가 쥐었다. 가지는 늘 달달 볶인 채 상에 오른다.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춘향을 시킬 수 없고, 졸지에 천덕꾸러기로 변한 가지볶음을 상하기 전에 혼자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미 맛있는 반찬이 아니다. 풀 죽은 나물 밀폐용기째 놓고 꾸역꾸역 늦은 점심을 먹는다. 다시 가지를 사나 봐라, 구시렁대는데 괜히 목이 멘다.
무침 타령하다 지쳤을까. 남자가 가지에 무심해졌다. 한발 물러나면 한발 다가가는 게 부부라는 말, 나한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원하는데 해 주고 말어?’
찜 요리는 재료를 잘 익히는 게 포인트다. 과하면 흐물거리고 모자라면 서걱거린다. 신경을 너무 썼나. 맘먹고 만든 가지무침이 그저 밍밍한 게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 맛을 살리려 간장과 참기름을 번갈아 넣고 주무르다 보니 더 뭉크러졌다. 때깔도 영 마뜩잖다.
시대 따라 요리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매양 그 타령인 건 게으름이 주범일 것이다. 유튜브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 무엇이든 척척 알려 준다. 선생이 시키는 대로 기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납작납작 썬 가지를 올린다. 물기만 살짝 마를 정도로 구워서 무친다니 어려운 것도 없다. 일일이 굽는 게 번거롭긴 해도 그래야 감칠맛이 난다니 따라 해야지. 시어머니의 가지무침에서 한 단계 레벨 업한 요리라고 생각하니 더 기대가 된다.
애써 만든 반찬을 식탁에 올리면서 나는 왜 남편의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다. 접시를 흘끗 보던 그가 가지 따위에 관심 없다는 듯 자기 앞 콩조림만 콕콕 집어 먹는다. 묶어 둔 심술보가 터지려는 걸 눌러 참으며 못된 그 앞에 가지 접시를 밀어 놓는다. 무슨 어깃장일까. 남자는 팔을 길게 뻗어 다른 찬을 듬뿍 집어다 하관이 들썩일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는다. 나의 자존심이 바닥을 치는 순간이다.
이쯤에서 가지 따윈 꼴도 보기 싫을 거라고 짐작하지 마시라. 여자는 여우다. 어수룩하게 늙어 가는 남자 하나 눈속임하는 건 일도 아닌 주부 9단이다. 무침이든 볶음이든 그놈의 가지를 기어이 먹이고야 말겠다는 오기는 또 뭔지. 딸아이 어릴 때 야채 먹이던 꾀를 떠올린다.
가지는 비빔밥을 고급스러운 맛으로 둔갑시키는 마력이 있는 터. 전날 퇴짜 맞은 가지에 온갖 거섶을 색스럽게 담아 볶은 쇠고기를 곁들인다. 달걀프라이로 점을 찍고 쑥갓 몇 잎 올리니 화사한 꽃무리다. 흔한 재료로 완성한 비빔밥이지만 누가 봐도 오감이 꿈틀댈 꽃밥이다.
미운 사람에게 조화로움의 완성판을 대령한다. 남편은 가지가 들어간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밥에 나물 섞는 손이 가뿐하다. 가지 요리에 언제 불퉁거렸나 싶게 가지 섞인 비빔밥에 농락당한 입은 쉴 새가 없다. 수저질 몇 번 하지 않은 듯한데 어느새 바닥 긁는 소리라니. 의자 뒤로 등을 기대며 끄윽~~! 패배를 인정하는 소리로 들린다. 한데 내 기분 유쾌하지 않다. 그가 화를 낸 이유는 뭐였을까? 남자 마음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그건 귀신도 모를 것이다.
남편은 저녁 후 늘 그렇듯 산책하러 나갈 준비를 한다. 꽉 찬 쓰레기를 버리려는지 봉지를 묶는다. 설거지를 끝낸 내가 잠시 갈등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안 나간다고 할 생각이었다. 퉁탕거리고 설거지하면서 왜 엊그제 친구와의 통화 내용이 떠올랐을까.
혼자 먹는 밥이 모래알 씹는 것 같다는 친구는 다짜고짜 웃기부터 했다. 난 그 웃음소리에서 어떤 비장미를 간파했다. 견갑골 안쪽 통증이 심해 파스를 붙여야 하는데 방법이 없더라고. 거실 바닥에 파스를 펴 놓고 그걸 조준해서 드러눕다 발라당했다나. 그 바람에 엉치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말할 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타령이 길어지면 그녀의 집에 잠시 다녀와야 하나 싶어 시계를 보는 사이 파스 붙여 주는 로봇이라도 사야 할 것 같다며 처음과 다른 목소리로 흐흐거리는 그녀가 고마웠다.
뾰족했던 마음 한쪽이 둥글어져 있다. 무덤덤한 일상, 너무도 하찮은 반찬 하나 만드는 방식으로 토라지고 구시렁댈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가 보다. 쓰레기 버리는 일 따위 정말 소소한 일이지만, 기꺼이 자기 몫이라 여기는 사람과 볶음이든 무침이든 마주 앉아 먹는다는 사실이 권태기 부부에겐 거룩한 일 아니냐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24년 아르코문학 창작산실 발표지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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