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린
숲 들머리에서 고개를 든다. 터져 나오는 짧은 탄성. 언제 이렇게 깊어졌나. 나무들 온통 가을 색을 두르고 있다. 숨 한 번 고르고 천천히 발을 뗀다.
마을 뒤 낮게 엎드린 둔덕산에 자주 오른다. 멀리 내려다보는 맛은 없어도 소곤거리는 듯한 예쁜 길을 품고 있다. 기껏해야 왕복 두 시간 거리의 능선길이지만, 심심할 만하면 굽이져 돌고 밋밋하다 싶으면 비탈져 지루할 새가 없다. 겨우 한 사람 비켜서는 조붓한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뒤숭숭하던 마음이 간 곳 없다.
둥치 큰 나무들이 우뚝우뚝한 길에 서자 비로소 숲에 든 느낌이다. 음영도 입구와 또 다르다. 우거진 나무가 하늘을 가렸는데도 홍등 걸린 듯 환한 길. 평평한 등성이 길에서 꽃으로 핀 단풍 숲을 스캔하며 천천히 걷는다. 가을을 건너는 나무들에 가만가만 인사 건네는 나만의 방식이다.
얼핏 바람이 이는가 싶은데 우수수 지는 잎들. 참새 떼가 한꺼번에 내려앉는 것 같다. 마른 잎은 흩어지다가 몰려다니며 바스락바스락 웃는다. 내리막이 주춤한 곳에 수북한 가랑잎들. 운동화 앞부리에 힘을 주고 낙엽 쓸 듯이 걷다가 소리 나게 밟아 본다. ‘바사삭바사삭’ 화살 볕 받은 잎에서 크래커 바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크래커엔 커피던가. 쌓인 낙엽 더미 속에서 모카 향이 날 것만 같다. 마음은 벌써 벤치에 앉아 커피를 따른다. 가을 숲에서 마시는 커피, 내가 그린 그림 속에 낙타색 머플러 두른 그대를 앉혀본다.
풍경이 숲을 이룬 길. 난 그 길을 걷는 또 하나의 점이다. 봄날 눈부신 꽃무리로 나비 부르던 덜꿩나무가 빨간 열매 달고 새를 유혹한다. 덜꿩나무 옆 소나무는 등이 굽었다. 식솔 감싸안은 듯 곁가지를 우산처럼 펼쳐 들었다. 청청한 바늘잎에 손바닥을 대어 보고 길을 간다. 칡넝쿨에 휘감긴 붉나무 붉은 잎에 해 싸라기가 오종종 머물러 있다, 몸이 휘어지도록 감기고도 버텨 주는 게 기특해서 내린 선물인가. 이렇게 볕 좋은 날 몸살이 나서 이불 쓰고 누워 있다는 친구에게 사진이라도 보내 줄까. 빛 받아 유난히 새붉은 잎에 초점 맞춰 셔터를 누른다.
모음이던 숲이 연둣빛으로 깨어나고, 산벚꽃 흐드러져 벌, 나비와 함께 움직씨로 윙윙거리던 숲이, 시나브로 저만의 빛깔로 물들고 갈빛 자음으로 떨어지며 가을 문장을 쓴다. 나뭇잎 사이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던 볕뉘 한 줌, 숲이 성긴 틈을 타 상수리나무 등허리에 납작 올라타 있다. 바람과 친한 키 큰 나무는 한파를 예비해 본능적으로 몸피를 줄여 가지만, 비워낸 만큼 하늘 한 뼘 더 누리는 기쁨도 있겠지.
숲엔 가을이 써 내려간 문장이 깔려있다. 산책도 책인가. 눈으로 발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가을 숲을 읽는다. 새들이야말로 숲속의 시인이다. 데시벨 높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나의 오래된 귀에 경쾌하게 파고든다. 내가 모를 뿐 숲의 수많은 생명체가 어우러져 내는 소리는 또 얼마나 다양할지···.
쉼터에서 잠깐 허리 펴고 또 걷는다. 아무리 원해도 다시 못 올 오늘을 건져 올리려고 나선 길. 내 생의 열차가 가을을 지나고 있어서인가. 본래 자리에서 자연의 순환열차에 환승하는 이 계절이 참 좋다. 조락도 완숙이련가. 돌고 돌아 가장 낮은 곳,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예전과 다르게 보인다.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 숲은 오늘도 새 문장 쓰느라 바쁘다. 헐거워질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숲. ‘자연은 위대한 도서관’이라고 한 헤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무자천서(無字天書)’라고 한 뜻 알 것 같다. 숲은 그 자체만으로 경전이다. 숲이 쓰는 문장을 베낄 재간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머리로만 쓰는 열 편 졸시를 자연에 동화되어 가슴 따뜻해지는 호사와 바꾸고 싶지 않다.
숲에 들어서야 마음이 열리는지 비로소 세상 속 나와 화해하는 자신을 본다. 나는 지상의 어떤 문장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남은 생 잘 익고 잘 비워 가을 숲이 써내는 저 유순한 정령들의 문장처럼 가볍게 낙하하기를 바랄 뿐이다. 가던 길 멈춰 서서 올려다본 하늘, 무연히 맑고 깊다.
-2024년 아르코문학 창작산실 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