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여자

by 흰꽃 향기 왕린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그 말에 빗대어 본다면, 나를 키운 팔 할은 어릴 적 살던 내 고향 ‘정읍’이 아닐까 싶다. 고작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살았을 뿐인데 그만한 비중이 되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몇 배는 더 서울살이를 했지만 지금도 정읍이라는 두 글자만 보이면 자석에 이끌리듯 눈길이 멈추니 하는 말이다.


집착에 가까운 향수는 때로 길 위에서 증명되곤 했다. 매사 성실히 산다고 했는데도 내 삶의 시계는 늘 헉헉대며 남들 뒤를 쫓아가기에 바빴고, 세상은 나만 빼고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동차 열쇠만 들고 나서도 가슴이 콩닥거리던, 내비도 없던 그때 시내 한복판에서 길을 잃었다. 삶도 운전도 늘 나만 멈춰 선 것 같아 서글픔이 울컥 차오르던 순간, 두리번거리던 시선 끝에 앞서가던 덤프트럭 번호판이 들어왔다. 먼지 뿌연 번호판에서 유독 ‘정읍’이라는 두 글자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도드라지게 보였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나는 홀린 듯 트럭을 쫓았다. 마치 나를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내 고단함을 알아주는 안식처로 인도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고속도로 진입로 간판을 보고서야 번뜩 정신이 돌아왔지만, 그때 내 무의식은 이미 정읍이라는 외할머니의 치마폭 속으로 숨어들어 안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버릇은 여전해서 오늘도 시속 70km로 달리던 차 안에서 ‘정읍백반’이란 간판을 찾아내고 말았다. 때 지나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자석에 끌리듯 식당에 들어갔다. 차려낸 반찬 하나하나가 어찌나 정갈하고 입에 감기는지 음식을 내오는 이에게 주인장이 정읍 사람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짐작은 적중했다.


정읍 확인 도장을 받고 무릎을 쳤다. 대개 전라도 여자들이 얌전하면서도 손끝이 매운 법인데, 오늘 마주한 그 깊은 손맛은 내 안의 근거 없는 자부심을 다시금 건드렸다. 사실 내가 아는 정읍 여자들은 하나같이 살림 하나는 끝내주게 야무지다. 그에 비하면 몸은 서울내기로 살면서 마음만 고향에 머물러서인지, 정작 내 살림은 겉만 번드르르한 건성굴레다. 그런데도 고향 여자의 찰진 손맛을 보면 마치 내 솜씨인 양 우쭐해지니, 내 입맛과 마음의 좌표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내 카톡 목록에도 증거가 남아 있다. 이름하여 ‘정읍친구들’. 어느 날,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들이 모이니 얼굴 좀 보자는 연락이 왔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나간 자리였지만, 어색함은 잠깐이었다. 친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했던 말을 또 하고, 들었던 말을 또 하며 낄낄거린다.


“야, 그때 내가 너 정말 좋아했었는데...”


코흘리개 시절에 뭘 안다고 좋아했네 어쨌네 하면서 매번 호들갑이다. 그들한테서 삼촌이나 이모한테 들었음 직한 정겨운 말투를 듣다 보면 슬그머니 웃음도 나온다. 나보다 늦게까지 고향에 남아 있었던 그들한테서 까마득히 잊었던 내 유년의 조각들을 전해 듣는 재미도 덤이다. 비록 매번 해묵은 이야기의 반복일지라도, 모인다는 전갈이 오면 또 슬그머니 가방을 챙기는 이유는 그들과 정읍으로 묶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트 진열대에서 수많은 농산물 사이를 지나다가도 ‘단풍미인’이라는 상표가 붙은 곡류를 보면 기어이 걸음을 멈추고 만다. 집에 잡곡이 아직 넉넉한데도 어느새 카트에 담고 있는 나를 보면서 혼자 헛웃음을 짓는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정읍 뉴스라도 뜨면 마치 내 집 안마당 소식이라도 접한 양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고, TV 배경에 내장산 풍경만 스쳐도 나만의 보물을 찾은 듯 넋을 잃고 화면을 쫓는다.


때론 이런 유별난 고향 앓이가 뒤처진 사고방식 같아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지역색을 따지는 고리타분한 어른이 된 것 같아 스스로를 나무라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게 정읍은 단순히 지도가 가리키는 고향이 아니라, 삶이 거칠게 출렁일 때 기댈 수 있는 마음의 심해인 것을.


나는 오늘도 정읍이라는 글자 앞에 어김없이 멈춰 선다. 그곳엔 여전히 나를 키운 팔 할의 바람이 불고 있고, 수줍은 고백을 삼키던 소년들과 길 잃은 나를 안심시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쯤 되면 못 말리는 중독이라 해도 할 말 없지만 고칠 마음은 없다. 정읍이라는 닻만 내리면 이토록 마음이 평온해지니 말이다. 다음번엔 또 어떤 낯익은 글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도드라져 내 발길을 멈춰 세울지, 기분 좋은 기대를 품고 다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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