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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보이는 얼굴(5화: 형의 마지막과 남겨진사랑

사랑으로 기억될 시간들에 대하여

by 마음의여백

5화: 형의 마지막과 남겨진 사랑


[떠나보내던 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후에도 형은 며칠을 더 우리 곁에 계셔 주셨습니다.

손을 주무르고 말을 건네면 혈압이 오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시던 형님은,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원래 우리 사촌 형제까지 모두 모이는 가족 모임이 예정된 날이었습니다.

형님은 남은 가족들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시고, 모임을 하기로 한 바로 그날에 우리 모두를 모이게 하셨습니다.


평범하던 일상이 무너졌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습니다. 영정 사진 속 형님의 온화한 눈이, 남겨진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형의 삶, 형의 사랑]


어젯밤 꿈에 형이 찾아왔습니다.

시골집 마당 평상에 누워계시다가,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40대 청춘의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릴 적 나는 두 살 위인 형을 유독 따랐습니다. 그림을 못 그렸던 내 숙제를 도와줘 칭찬을 받게 해 준 것도 형이었고, 연탄가스가 새어 나오던 자취방에서 나를 구해준 것도 형이었습니다. 장남이었던 형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군에 갔고, 제대 후 곧바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가족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습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이었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아 힘들어했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 형이 은퇴 후 찾은 행복이 바로 '사진'이었습니다. 매일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 가방을 메고 경마장, 궁, 숲, 야경, 불꽃놀이 등 전국의 출사지를 열정적으로 누비셨습니다.


내게 카메라를 사도록 은근히 유혹하고, 작년 7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함께 출사를 다녔습니다. 행주산성의 노을, 하늘공원의 억새, 서울의 야경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청와대 풍경을 앵글에 담은 것이 형과 함께한 마지막 출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형과 함께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찍은 사진]

[남겨진 이들의 시간]


형이 떠난 후,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운전을 하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문득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설 명절, 든든하던 큰아들의 빈자리 앞에서 부모님은 힘없이 약해지셨습니다. 아버지는 슬픔을 잊으려 집 뒤 대밭에서 신우대를 베시고,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힘겹다고 하십니다.


49재에 형을 보고 왔습니다. 눈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쳐진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마음의 근육을 키워보려 합니다. 눈물도 아끼고,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마치며: 사랑의 유산]


얼마 전 형의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형은 7월에 있을 큰아이 결혼 소식에 참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뻐하며 조카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서야 할 형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혼자 입장하는 조카의 뒷모습을 보며,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형님이 떠나신 후, 우리는 많은 것을 다시 배웠습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말없이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얼마나 큰 사랑의 시간이었는지를.


이 기록은 형님을 잊지 않기 위함이 아닙니다. 형님이 남기신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이어가기 위한 다짐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사랑을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을 더 따뜻하게 모시고, 형수님과 조카들과 힘써 함께하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 형님이 보여주셨던 따뜻함을 실천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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