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과도기의 르네상스, 15세기 중후반
르네상스 최초의 화가 마사초가 죽은 지도 약 130년이 지난 15세기 중후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완숙한 원근법을 기반으로 회화의 구도, 소재, 빛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3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소개를 하고자 한다.
1431년생인 '안드레아 만테냐'는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라는 도시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당시 같은 도시에서 잠깐 활동했던 르네상스 최초의 조각가 '도나텔로'(8-2장 참고)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도나텔로'의 해부학적 인체표현과 감정의 극적인 표현은 '마테냐'만의 회화적 원근법과 어우러져 입체감과 공간적 착시효과를 극대화시켜 시청자에게 강렬한 감정을 전달한다. 특히, 사물과 사물 간의 공간뿐이 아닌 인물자체에까지 원근을 적용한 극단적인 '단축법'의 혁신은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위 작품 중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야고보>는 젊은 20대 시절의 작품으로 원근법과 해부학적 연구, 드라마틱한 서사가 돋보이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만테냐는 그의 인물상이 단단하고 형체가 있는 존재들처럼 서 있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무대를 창출하기 위해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능숙한 연극 연출가가 하듯이 인물들을 배치하여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의 의미와 과정을 전달하려 했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실하게 볼 수 있다."_P 259 / Story of Art.
약 25년 후 그려진 <죽은 그리스도>는 크고 두툼한 두 발에서 시점이 출발해 과감히 단축시킨 몸통을 거쳐 발의 크기와 거의 비슷한 머리가 화면 뒤를 지탱하며 끝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시신을 마치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시점을 경험하게 되어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하고 독창적인 구도로 시청자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과 감정적 몰입을 선사한다.
피렌체 남부, 아레초라는 도시에는 기하학자이자 화가였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있었다. '점은 사람들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선은 한 점이 다른 점까지 확장된 것이다. 면은 선들에 의해서 에워싸인 넓이와 길이의 합이다.' 이 글은 그의 논문 ‘회화의 원근법에 대하여’의 첫대목으로, 그에게 수학적 엄정성은 타협이 불가능한 원칙이었으며, 고전 기하학의 추상적 개념들을 스케치와 구성, 채색이라는 현실적인 작업에 적용하려 노력하였고 이 노력이 극대화된 작품이 <채찍질당하는 그리스도>이다.
등장인물들의 무릎 정도에 위치한 소실점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화면 속의 오른쪽 3명의 인물들을 마치 거인들과 같이 우러러보게 되고 열주랑 안쪽 멀리에는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와 세 명의 형리들이 서 있다. 안쪽 구석에는 빌라도가 권좌에 앉아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내부의 모든 건축물들은 광장 바닥의 격자 선에 맞추어서 배치되어 있고, 정면이 화면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너무나 명징해서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이러한 구성은 '피에로'가 위의 논문에서 물체의 평면도와 입면도를 조합하여 입체와 삼차원적 공간을 재현하도록 했던 계산 방식의 구체적 예시인 것이다. 원근법에 낯선 15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이 맞닥뜨릴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을 담고 있는 위대한 화가의 교과서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있어 우리는 '산드로 보티첼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은 과도기 르네상스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구도에 따라 비너스는 화면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녀의 주변에 배치된 제피로스(바람의 신)와 클로리스(봄의 여신), 그리고 오른쪽의 호라이(계절의 여신)는 비대칭으로 균형을 이루며 동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원근법적 깊이를 약화시키는 대신, 우아한 선과 움직임의 흐름을 강조하여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화사한 컬러감과 함께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사실 보티첼리의 인물은 보다 덜 단단해 보인다. 그의 인물들은 마사초의 인물들처럼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가 보여주는 우아한 운동감이나 선율적인 선들은 기베르티나 시모네 마르티니와 같은 14세기의 미술을 상기시켜 준다. 그의 비너스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그녀의 목이 부자연스럽게 길거나 어깨가 가파르게 처져 있다든가 하는 점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게 된다. 즉 우아한 윤곽선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에 구애받지 않은 보티첼리의 자유로운 표현은 하늘로부터 내려진 선물로서 화면의 아름다움과 조화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_P 264 / Story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