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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8-4. 과도기의 르네상스, 15세기 중엽

by 최영철

전통과 혁신, 시간이 필요해 1.




약 1400년까지는 유럽 각지의 미술이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해 갔다. 회화나 조각의 목적이 모두 종교라는 한 가지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며, 이 시기의 고딕 화가들과 조각가들의 양식을 '국제 고딕 양식'이라 불리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초 이탈리아와 북유럽의 미술가들이 이룩한 새로운 발견들은 미술을 성경의 이야기만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의 한 단면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혹되었고 이러한 거대한 혁명과 모험 정신은 결국 중세와의 진정한 단절을 이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분절의 역사가 아닌 이상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으니 절충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13장 제목이 '전통과 혁신'인 이유이기도 하다.


"15세기 피렌체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새로운 고안을 오래된 전통에 맞도록 조화시켜야만 하는 그런 처지에 놓일 때가 많았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고딕 전통과 근대적인 양식 사이의 절충은 15세기 중엽의 많은 거장들의 특징이었다."_P 250/Story of Art


이렇게 전통과 혁신의 타협으로 성공한 피렌체의 거장들 중에서 '도나텔로'와 같은 세대의 조각가인 '로렌초 기베르티'를 으뜸으로 들 수 있다.


세례 받는 그리스도 by 기베르티/1427년(좌), 헤롯 왕의 잔치 by 도나텔로/1423~7년(우)


본의 아니게 '기베르티'와 '도나텔로'를 8-2장에 이어 다시 한번 비교하게 되는데, 위의 조각품들은 공히 시에나 대성당 세례당의 세례반에 조각된 부조 작품으로 왼쪽이 '기베르티'의 작품이다. 정교한 청동 주조 기술이 돋보이며, 세부 묘사와 표면 처리에서 그의 장인 정신을 확인할 수 있으나 도나텔로처럼 원근법을 통한 공간감을 표현하는 등 실험적인 요소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모호한 배경과 대비되어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고 인물과 배경의 깊이감의 차이를 주어 공간감과 사실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당대의 새로운 발견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고딕 미술의 이념에 충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중엽의 또 다른 거장인 피렌체의 화가 '파올로 우첼로'는 '마사초'의 원근법을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의 후계자로 불린다. 아래의 <산 로마노의 전투>는 피렌체가 루카(밀라노)와의 전투에서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부유한 은행가의 요청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근경과 원경을 사물의 크기에만 차이를 두고 색감의 차이는 없이 선명하게 표현하여 마치 목각인형 같은 느낌을 주는데 특히, 바닥에 떨궈진 창과 병사들이 어느 한 점을 향해 가지런히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소실점에 세상을 고정시켜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세상을 표현한 작가의 의도이며, 더불어 전투와 어울리지 않는 장군의 붉은색 모자, 오렌지 나무, 말의 금빛 장식 등은 자세히 표현한 반면, 바닥에 흥건해야 할 피는 그리지 않아 판타지적 요소를 부각해 전쟁을 이상화시켰다.


산 로마노의 전투 by 파올로 우첼로 / 1450년 경
노아의 생애 / 1445년 경(좌), 화병의 원근법 연구 by 파올로 우첼로 / 연대미정(우)



'우첼로'의 원근법 연구는 마초키오(Mazzocchio/3차원적 도형)를 적극 활용하여 화병, 모자 등 실물을 그리는데 이용하였다. 위 <노아의 생애> 작품에도 노아의 아들이 목에 생뚱맞게 두르고 있는 마초키오를 볼 수 있으며, <산 로마노의 전투>의 그림 중앙의 백마를 타고 있는 장군의 붉은색 두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엄격한 원근법 묘사로 인한 거친 윤곽선을 부드럽게 해주는 명암과 공기의 효과를 구사하는 방법은 다소 미숙해 보여 2D 애니메이션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의 국립 미술관에 있는 원화를 직접 보면 잘못된 그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기하학을 그림에 응용하는 데 지나치게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첼로'는 진정한 예술가였던 것이다."_P 255/Story of Art


15세기 중엽, 당시 미술가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장인'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미술가들이 공방에서 일하며 도제들을 훈련시켜 '기술적 숙련도'와 '재료를 다루는 능력'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으로 특히, 개인적인 창작보다는 후원자의 의뢰를 받아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십수 년 후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뒤러 등 르네상스의 천재적 거장들이 곧 출현하면서 이들의 창작 활동은 단순한 기술적 작업이 아닌 창조적이고 지적인 탐구로 자리매김하며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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