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초, 이탈리아와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부활, 인체의 이상화, 원근법에 중점을 둔 반면,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종교적 주제는 물론, 일상의 세부 표현, 상징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발전하였다. 특히,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랑드르(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 일부)의 미술가 '얀 반 에이크'를 빼놓고는 논할 수가 없다.
무한한 주의력과 인내력으로 현실의 세세한 부분들을 비춰주는 거울을 창조하기 위해 '얀 반 에이크'는 회화의 기법까지도 개량했는데 이것을 *유화라 부르며, 그가 최초 사용자로 알려져 있다. '유화'라는 물감이 대중화되기 전까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가들조차도 *템페라나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유화 : Oil painting. 기름에 갠 안료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으로 유채화(←수채화)라 함. 그림을 망치거나 번질 경우 여러 번 덧칠하여 수정이 용이하고 반짝이거나 털 같은 세부 묘사가 가능함.
*템페라 : Tempera. 유화가 대중화되기 전에 가장 널리 사용된 기법 중 하나. 안료를 달걀노른자 또는 기타 유기물(꿀)과 혼합하여 사용. 색상이 선명하나 빠르게 건조되어 수정이 어려움.
*프레스코 : Fresco. 건축 표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술. 벽에 발라진 석고의 상태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나뉘며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고 세부 묘사가 어려움.
성삼위일체 중 일부 by 마사초/프레스코화(좌), 아르놀피니의 약혼 중 일부 by 얀 반 에이크/유화(중), 비너스의 탄생 중 일부 by 보티첼리/템페라화(우)-제작 연대기 순
자연에 대한 '얀 반 에이크'의 관찰은 앞서 살펴본 랭부르 형제보다 더 인내심이 있었고 세부 묘사에 관한 지식도 훨씬 정확했다. 물론, 이러한 자연의 모방을 얼마나 정확히 표현하였는가를 가지고 위대한 미술가를 평가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일지 모르나 북유럽 미술이 발전해 나간 방식을 이해한다면 이와 같은 그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헨트 제단화 세부 by 얀 반 에이크/1432년(좌), 베리 공작의 기도서 5월 by 랭부르 형제/1410년경(우)
"북유럽과 이탈리아의 미술은 이런 면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차이를 보여왔다. 물건이나 꽃, 보석 또는 천의 아름다운 재질감을 표현하는데 뛰어난 작품들은 대개 북유럽 화가, 특히 네덜란드의 화가가 그린 것이고, 반면에 대담한 윤곽선과 원근법이 명확하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확실하게 파악한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_P 239/Story of Art
'얀 반 에이크'의 위대함은 특히 초상화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그의 작품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도나텔로'나 '마사초'의 작품 못지않게 새롭고 혁명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카펫, 슬리퍼, 샹들리에 등 이 그림에는 일상의 온갖 것들이 다 있고,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르놀피니의 집을 직접 방문한 느낌으로 15세기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특히, 아르놀피니 부부의 약혼식 장면으로 알려져 있는 이 그림은 그림 중앙의 거울 위쪽 벽에는 '얀 반 에이크가 입회했노라'라는 문구와 함께 그 거울에 비친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화가이자 약혼식의 증인으로서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좌), 그림 중 거울에 비친 얀 반 에이크의 모습 by 얀 반 에이크 / 1434년
즉, 역사상 처음으로 작가가 직접 목격자가 되었고 그가 직접 그린 그림에서 그를 볼 수 있게 된 우리는 600년 전에 일어난 사실적인 장면 또한 함께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그림에는 배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통해 다양한 상징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그림 속의 개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신실함을, 샹들리에에 켜진 하나의 초는 신의 존재와 함께 약혼식의 성스러움을, 오렌지나 예비부부의 모피 등은 이들의 재정적인 여유로움과 그들의 약혼이 사회적/경제적 결합임을 암시한다.
'얀 반 에이크'는 이탈리아 중심의 르네상스와는 다른, 북유럽 르네상스의 독특한 사실주의와 상징주의를 정립했고 종교적 주제뿐만 아니라 세속적 장면과 초상화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중세의 종교 중심 미술에서 벗어나 세속적 주제를 발전시켜 근대 미술로의 전환을 촉진시킨 북유럽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