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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10-2. 식상한 르네상스는 가라, 바로~크 시대. 17세기 전반기

by 최영철

썩어도 준치, 르네상스 in 바로크




17세기초 당시 로마는 오늘날의 미술가들에게 있어 파리나 뉴욕과 흡사했다. 이유는 가톨릭의 수도가 로마였고 가톨릭과 교황은 유럽 최대의 예술 후원자였기 때문이다. 막강한 후원과 문화적 권위를 가진 로마에서 인정을 받으면 유럽 전체에서 명성을 얻는 구조로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각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로마로 모여들었다. 이런 로마에서 피어난 바로크 미술은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정치와 종교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발전하게 된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중앙 집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 건축, 미술 등 시각적 상징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축의 '베르사유 궁전'과 미술의 '고전주의적 바로크'가 대표적이다.


고전주의적 바로크(Classical Baroque)는 르네상스의 비례, 이성적 성향 등을 계승한 양식으로 왕권 중심의 질서 있는 국가 시스템, 지식인의 이성 중심 철학, 공식 예술 제도의 형성이 맞물리며 국가의 공식 미술로 자리 잡게 된다. 표 미술가는 프랑스 근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니콜라 푸생'으로 '철학자 화가'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by 니콜라 푸생 / 1639년




위 그림은 그의 대표작으로 단순한 풍경화나 장면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유도한다. 아주 평범한 남자 셋이 한 여성과 함께 석관 앞에 있다. 남자들은 석관 전면에 새겨진 글귀를 해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석관에 새겨진 글귀는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라는 말이다. '아르카디아'는 고대 그리스 시인들이 찬미하던 '이상적 자연 낙원'을 뜻하며, '나'는 '죽음'을 의미한다. 즉, '평화로운 낙원에서 조차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당신이 아무리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푸생'은 감정을 자극하는 대신, 이성적으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정적인 구도와 절제된 색채, 고요한 인물들의 표정 속에는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이라는 주제를 담담히 풀어내는 고전적 품위가 느껴져, 그의 그림은 ‘보는 철학’이라 불릴 만큼 단순한 미적 즐거움을 넘어서 깊은 사유의 장을 마련해 준다.


자, 이제 플랑드르로 가보자. '플란다스의 개'라는 TV애니메이션을 아시는가? 아신다면 연식이 조금 되신 분들이겠지만 아무튼, 주인공인 꼬마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의 주인공이자 바로크 미술의 완성자라 불리는 '피터 파울 루벤스'가 있다.


'플란다스의 개' 중 루벤스의 성화 장면(좌), 성모승천 by 루벤스/1626년(우)




루벤스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약 8년간 머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초기 예술을 본격적으로 접했다.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의 색채와 화려함을 흡수했고, 로마에서는 카라바조의 극적인 명암대비와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적 인체 묘사, 라파엘로의 균형 잡힌 구도 등을 학습했다. 이러한 경험은 고전주의적 이상미와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현기법을 조화시켜 ‘이탈리아식 바로크’를 플랑드르 회화에 접목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십자가에 올려지는 예수(좌) by 루벤스 / 1610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우) by 루벤스 / 1614년




'고전주의적 이상미와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현기법의 조화'라는 의미를 위 좌측의 작품을 통해 이해를 돕자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끌어올리는 장면으로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예수의 고통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사람들의 몸은 근육질이고, 자세는 균형 잡혀 있어 마치 고대 그리스 조각을 보는 듯하다. 예수의 몸 또한 근육질의 몸매와 함께 고통 속에서도 조화롭고 이상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 특히, 인물들 사이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빛의 활용과 강렬한 각도의 구도가 장면에 역동적인 긴장감을 더하는데 이것은 카라바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루벤스'는 생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예술가뿐이 아닌 유명 인사로 거듭났다. 그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고, 유럽 최고의 지성들과 과학과 고고학에 대해 논했으며, 스페인과 영국 통치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외교적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루벤스에게 그 이전의 어떤 화가도 누려보지 못한 명성과 성공을 거두게 만든 것은 거대하고 다채로운 화면을 손쉽게 구상하는 천부적 솜씨와 그 속에 활기가 충만하게 떠돌 수 있게끔 하는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재간과의 조화가 있었다. 그의 예술은 궁정의 사치와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그러한 왕족들의 권력을 미화하는데 대단히 적합했다."_P 401/St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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