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계몽? 계몽! 다시 소환된 고전(Classic), 신고전주의
짧고 굵었던 로코코의 시간이 지나고 '신고전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신고전주의'는 'Neo-classicism'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절정기를 일컫는 '고전기=Classic'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3-4장 참고). 우리는 이 고전기의 핵심 이상이 '이상적 비례와 조화', '인본주의'임을 익히 알고 있으며, 이 고전에 대한 유럽인들의 추앙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르네상스'를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런 유럽인들이 18세기에 왜 다시 고전이라는 양식을 소환한 것일까?
유럽의 17~8세기는 이른바 혁명의 시대였다. 뉴턴, 코페르니쿠스, 인쇄술로 대표되는 과학기술혁명과 종교개혁 그리고, 신대륙 발견에 공헌한 대항해시대 등 근대 사회로 가기 위한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이를 통해 중세적 세계관은 인간, 이성, 교육, 공공 등을 중시하는 근대적 세계관으로 점차 바뀌게 되었고 결국, 신에서 인간, 종교에서 과학, 왕정에서 시민, 농업에서 상업, 종교적 감성에서 이성으로 사유의 중심이 옮겨갔다. 특히, 경제력은 있으나 정치적, 사회적 권리는 제한된 시민계층인 '부르주아'의 성장은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필요로 하였고, 이들의 지적·정치적·사회적 욕구에 호응하면서 성장한 사상이 '계몽주의*'였다. '신고전주의'는 이 '계몽주의'의 사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탄생한 예술 양식이다.
*계몽주의-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과 권위에 대한 비판을 통해 중산층 시민을 계몽하고, 보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 지적·사회적 운동.
특히, 1748년 이탈리아 고대도시 폼페이 유적의 발굴(3-7장 참고)은 생생한 고대 문명을 직접 눈으로 봄으로서 유럽인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려 신고전주의 확산에 트리거가 되었고, 계몽주의적 이성과 도덕성에 대한 열망, 사회 변화와 결합되어 신고전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 국가 중 신대륙 발견의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럽 대륙으로의 고대 유적 탐방 즉, '그랜드 투어'의 열풍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런 영국에서 주목해야 할 두 화가가 있었으니 '조슈아 레이놀즈'와 '토마스 게인즈버러'이다. 이 둘은 동시대 화가로, 흥미로운 것은 미술계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같은 경쟁적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은 사회적 세련됨과 계급의 품격을 드러내고자 '초상화'의 수요가 많았으며 이 둘은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의 시장을 각각 양분하고 있었다. 또한, 이 둘의 성향과 미술적 세계관은 정반대로 '레이놀즈'는 영국 왕립아카데미 초대 회장으로서 권력과 신고전주의의 원칙을 강조한 미술가였고, '게인즈버러'는 보다 자유롭고 감성적인 화풍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천재형 미술가였다.
이 둘의 화풍을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사라 시돈스를 그린 초상화를 보며 비교해 보자. 같은 인물을 '레이놀즈'는 그리스·로마풍 그림을 그리기 위해 로마식 옷을 입혀 연극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뮤즈로 즉, 여신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반면 '게인즈버러'는 한 인간으로서의 시돈스를 그렸는데 극적인 조명 등 재미 요소는 조금 부족했지만, 무대 뒤 실제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평소 입는 옷을 표현하여 인물의 개성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으나 곰브리치는 이 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레이놀즈의 보다 작위적인 양식으로부터 게인즈버러의 참신하고 순수한 접근 방법을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게인즈버러는 '지성적인'체 할 의향이 전혀 없었으며 단지 그의 뛰어난 붓놀림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과시할 수 있는 솔직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초상화를 그리길 원했다."_P 468/Story of Art
특히, 영국 최고의 화가들 모임인 왕립아카데미의 수장이자 회원들에게 예술 이론을 가르치는 당시 ‘화가들의 화가’였던 '레이놀즈'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모든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나왔으니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했으며, “초록색과 파란색을 너무 많이 쓰면 그림이 이상해진다”라는 이론을 평소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한다. 그와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게인즈버러'는 자주 그의 이론을 반박하였고, 실제 반박을 위한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이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블루보이>다.
위 작품은 '게인즈버러' 특유의 부드러운 붓터치와 섬세한 빛 표현이 돋보이는 그의 대표작으로 배경의 풍경 처리와 색감의 균형도 매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한 초상화를 넘어서, 색채 실험·사회적 상징·기술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영국 미술사와 문화사에서 상징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레이놀즈가 고대사에 나오는 야심적인 신화의 장면이나 일화들을 그릴 시간과 여유를 갈망한 반면에 게인즈버러는 그의 경쟁자가 경멸했던 바로 그런 주제, 즉 풍경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의 풍경화를 사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풍경화는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린 습작으로 남아있다."_P 469/Story of Art
글을 쓰다 보니 편향적 성향의 글이 되었으나 변치 않는 사실은 이 두 화가 모두 영국 미술사에 있어 불가결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