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프롬프트로 음악을 만들고, 마음으로 음악을 고르는 일에 대하여
AI로 음악을 만들어보았다. 시작은 유튜브에 자연 영상 콘텐츠를 올리면서부터였다.
직접 자연을 촬영하다 보니, 매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국내에서는 비행기와 헬리콥터 소음이 자주 녹음에 섞여 들어갔다. 조용한 숲을 담으러 갔다가, 전체 분량의 30~60%가 소음으로 오염되기도 했다. 윈드실드를 착용한 마이크는 바람 소리엔 효과적이었지만, 오히려 항공기 소음을 명확하게 담아내버렸다. 결과적으로 고요한 사운드를 담으려던 영상은 거의 소리를 죽여야 했고, 음악이라는 대안을 고민하게 되었다.
가사 없는 피아노 솔로 음악을 만들기 위해 GPT의 추천으로 AIVA라는 앱을 사용해봤다. 그러나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원하는 방향의 음악이 나오지 않았고, 결과물도 내 감성과 맞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만에 첫 시도는 끝이 났다.
포기할 즈음, 추성훈 유튜브에서 한국어 가사를 음악으로 만든 AI 콘텐츠를 발견했고, 거기서 SUNO AI를 알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며 간단한 프롬프트를 입력해봤는데, 결과물의 퀄리티가 기대 이상이었다. 아마추어 이상의 작곡가가 만든 것처럼 들렸다.
이후 유료 플랜을 통해 본격적으로 무가사 음악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프롬프트를 바꾸며 다양한 음악을 뽑아내는 과정이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Create' 버튼만 반복 클릭하는 내가 보였다. 음악 한 곡을 듣고 판단하는 데 1분 이상, 곡이 미묘하면 여러 번 반복 청취가 필요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막귀를 자처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리스트를 골라내야 했다.
힘들게 완성한 첫 음악을 영상에 입혀 업로드했다. 애착이 가는 음악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힐링 음악은 메이저 채널처럼 알고리즘을 타지 않으면 노출되기 어렵다. 추성훈처럼 이미 팬층이 있는 채널이라면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겠지만, 음악만으로는 주목받기 힘들다는 걸 절감했다.
음악 작업을 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은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자극이 되었다. 나도 한 번 가사를 넣어보자. 자연을 상징하는 '민들레 홀씨'를 테마로 힐링 음악을 만들어봤다. 다행히 몇 번 시도 끝에 결과물이 잘 나왔고, 영문 버전도 자연스럽게 완성되었다.
작업 중 문득 떠오른 노래가 있었다. 일본 가수 우에무라 카나의 '화장실의 여신'. 할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이 곡은 연말 시상식에서 불릴 정도로 큰 울림을 줬다. 나도 할머니를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을 써보고 싶었다. GPT와 함께 가사를 만들고, SUNO AI에 적용했다.
20번 정도 시도하자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나왔지만, 가사의 음절 수가 달라지면 이상한 허밍이나 음절 누락이 생겼다. 결국 물결(~)과 띄어쓰기를 이용해 억지로 타이밍을 맞춰야 했고, 완성도는 처음 감동만큼 도달하진 못했지만 일단 완성한 것에 만족했다.
"이 정도면 원하는 음악은 나온 셈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업로드 후 찾아오는 조회수의 정적은 허무함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좋은 곡도 대중의 귀에 닿지 않으면 의미를 갖기 어렵다. 결국 나처럼 이름 없는 사람이 만든 노래는, 아무리 숨은 명곡이라도 드러날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GPT의 조언을 받아 Soundrop이라는 유통 플랫폼을 통해 음원을 전 세계에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끝장을 보는 성격 덕분에 결국은 결과물도 만들고 유통도 했지만, 내 안엔 의문이 남았다. 생성형 AI는 과연 창작인가? 내가 쓴 건 몇 줄의 프롬프트일 뿐이고, 그 외의 모든 건 모델이 만들어낸 결과다.
디자인이나 코딩은 내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지식이 쌓인다. 하지만 AI 창작은 명확한 학습보다, 선택과 반복의 영역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직접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고퀄리티 음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라는 건 분명 의미가 있다. 영상 또한 마찬가지다. 직접 찍을 수 없는 장면도 AI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기술은 점점 더 대중화될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3곡의 음악: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낀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AI가 만든 음악을 판단하고 고르는 건 단순한 클릭 이상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특히 마음에 들듯 말듯한 곡들은 여러 번 반복해 들어야 했고, 그렇게 하루가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해주는 곡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프롬프트는 일종의 스타일 가이드일 뿐, 매번 랜덤한 결과가 나왔고, 그 안에서 ‘내 곡’을 찾아내야 했다. 이는 마치 음악을 만들기보단, 이미 만들어진 곡들 사이에서 내 취향에 가까운 것을 골라내는 작업 같았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저작권과 관련된 불확실성이다. 생성형 AI가 만든 결과물은 분명 나의 선택과 조율이 들어간 창작이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회색지대다. 유사한 결과물이 누군가에 의해 선점되거나, 창작물로 등록된다면, 나는 그것을 증명할 마땅한 근거가 없다. 결국 누군가 같은 곡을 더 잘 리메이크하고 증명한다면, 그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에 닿을 수 있는지 실험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아직 기술은 완전하지 않고, 나도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길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