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비로소 나의 일과 삶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경기도로 이사한 뒤, 먼 거리의 회사를 퇴사하고 꼬박 세 달이 지나서야 이룬 일이다.
처음엔 집 안 드레스룸을 개조해 홈오피스를 만들었다.
사무용품을 하나하나 고르고, 공간을 내게 맞게 꾸미는 일은 꽤 즐거웠다. 업무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집’이라는 장소 자체에 있었다.
출퇴근이 없는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했다.
아내는 내 공간을 완전한 ‘일터’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나는 소파에 잠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점점 육아와 가사도 나의 몫으로 흘러들었다. 처음엔 ‘이 정도야’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혼란에 빠졌다.
일도 아니고, 가정도 아닌, 어딘가 어중간한 위치.
집이라는 공간은 ‘일하는 사람’이 되기에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했다. 결국 자잘한 오해들이 마찰이 되고, 쌓이고, 부딪혀, 홈오피스를 포기하게 됐다.
얼마 후 GPT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럴 땐 사무실을 얻는 게 낫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움찔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을, 인공지능조차 단호하게 인정해버린 느낌. 나만은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 그것도 환상이었다.
결국 나는 집과 일의 경계를 분리하기로 했다.
그게 오히려 서로를 지켜주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근처에 괜찮은 공유오피스가 있었고, 자유석을 신청했다.
카페를 좋아하는 내게는 오히려 이런 공개된 공간이 더 잘 맞는다. 조용한 공간, 멋진 뷰, 쾌적한 공기와 시스템.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참 마음에 든다.
물론 불편함도 있다.
의자는 생각보다 불편하고, 매일같이 들고 다녀야 하는 짐은 여전히 무겁다. 백패커처럼 장비를 경량화해도 가방은 가볍지 않고, 앞으로 포터블 모니터까지 추가할 생각이라 짐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점심을 먹을 때도 가방을 어딘가 맡길 수 없는 건 유일한 단점이다.
그 외에는 모두 만족스럽다.
이제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이곳으로 출근한다.
생각해보면 퇴사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시간’이었다.
편도 두 시간씩 걸리는 통근, 점점 줄어드는 가족과의 시간, 내게 주어진 하루의 대부분을 ‘버티기’에 쓰게 되는 일상.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서 멈췄다.
허리디스크를 치료하고, 운동을 시작하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시 돌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괜찮은 척’하면서 지나쳐온 게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불안하지 않아요?”
나는 말한다.
“아니요. 오히려 지금이 가장 만족스러워요.”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간을 ‘내 의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게는 가장 값진 일이다.
언젠가는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야생 같은 공간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들이 언젠가 나를 더 나은 어른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