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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Feb 27. 2023

03. 내 언어 온도는 몇 도일까

『언어의 온도』를 읽고



선생님, 진짜 언제 끝나요?

 6학년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던 나와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은 마지막 훈계를 이어갔다. 점심 무렵의 햇볕은 뜨겁고 몸은 피곤했다. 다들 꾹 참으며 ‘이젠 끝나겠지’ 하는 그 찰나에 내 귀에 짜증이 난 목소리가 들렸다. 또 그 녀석이다.


 “넌 왜 그리 이기적이냐!”

 ‘우리, 좀만 참아보자.’라는 말 대신에 참았던 내 화까지 보태어 쏜살같이 나갔다. 순간 녀석의 얼굴빛이 달라졌고 그걸 본 나도 아차 했다. 나는 미안했지만 얄미운 마음도 있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렇다고 그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2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아이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그 후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한 일이 되었고 그 후부터 가슴에 핫팩 하나 품으며 차가운 말을 데우고 있다.   

   

 따뜻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인품과 언어 사용법을 터득한다면 지금보다야 나은 사람일 것 같다. 하지만언어의 온도를 쓴 저자는 그런 방법이나 그런 사람들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온도를 측정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by 오솔길


 저자는 마음의 창이 투명한 사람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세세히 잘 관찰한다. 처음 만나는 이웃들의 행동과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나가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중 전철 안에서 마주 앉아 있다가 들었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울린다. 아픈 손자와 할머니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한다.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나는 아픈 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당연히 ’네 할미니까 잘 알지!’라고 대답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비슷한 상처가 보이면 남보다 재빨리 알아챈다. 그리고 아파 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서는 뭔지 모르게 뭉클한 마음이 일렁거렸다.


 고민을 말하는 동료는 얼마나 힘든지 눈물을 보인다. “올해는 너무 힘들어요. 28명이 아니라 280명을 가르치는 기분입니다. 화만 내는 내가 싫고 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아파요.” 그 마음이 내게 전해오며 안타깝기만 했다. 무리 경력이 많아도 버거운 일이 생기곤 한다. 그의 고달픔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 없었다. '나도 종종 그래요. 같이 1년 더 버텨봐요.' 

얼마 후에 동료는 '그때 고마웠어요'라는 말을 전했다. 나는 그렇게 말한 동료가 오히려 고마웠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해결 방법을 알려줄 때보다 공감 한마디에 더 힘을 얻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요즈음은 아이들이 내 반응을 얻고 싶어 하는 행동을 자주 한다. 스스로 넘어졌을 뿐인데 다 들으란 듯이 울고, 속상한 마음을 괜히 친구에게 화를 내며, 걱정이 앞서면 엎드려 책상과 딱 붙어 놔주질 않는다. 그러다가도  ‘누구야, 괜찮니?’라는 말에 조르르 와서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비집고 들어와 내게 기대고 싶어 한다. 보듬고 들어올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그만큼 아이들로 인해 성장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지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요즘 나의 온도는 조금 따뜻해졌으면 좋으련만.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유난히 마음이 무거운 날, 산책을 하다가 검은 등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마음이 맑아지고 온기까지 생기는 것 같았다.


오늘의 책  
『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 말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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