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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r 03. 2024

호모 헌드레드

 그 소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호모 헌드레드'라는 제목으로 어느 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을 기사로 읽는 중에 호기심이 생긴 글이다. 세계사 공부 좀 해봤다면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에렉투스’는 익히 들어 본 용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미래 인류의 현실이거나 ‘듄’ 영화 같은 우주 세계가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흥미가 느껴졌다. 부리나케 검색한 후 그 긴 글을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제야 생소한 단어는 아닌데 오히려 잘 모르는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이 궁금했다. 내친김에 알아보니 국제연합이 ‘세계 인구 고령화’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2009년부터 등장한 용어라고 한다. 앞으로 건강 관리만 잘하면 100세 장수를 누리게 된다는 예측의 결과다. 바로 '100세 인간'이라는 의미다.     


 가깝게는 시가 부모님과 친정 엄마가 다 80세를 넘었고 90세에 근접한 사실만 봐도 100세 시대는 현실이 되었다. 딸과 며느리로서 보는 부모님들의 노후는 큰 병 없이 건강할 때는 두둑한 보너스처럼 기쁘기만 했다. 그런 분들이 80세를 넘고부터는 노화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우선은 아픈 곳이 여기저기로 많아지고 입원하거나 수술해야 할 정도로 위중하기도 하다. 당연히 병원 가는 횟수와 복용하는 약이 늘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노년들이 겪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그러니 괜찮다!' 하던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한결같이 ‘치매’였다. 치매만큼은 싫다고 한다.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비참했던 모습을 마주 보며 살던 이웃이 그대로 보여준 까닭이다.      


 엄마는 기억력이 좋고 셈이 빠른 분이었다. 상고를 나온 아버지보다 딸기농사로 나오는 수확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비닐하우스의 수만큼 출하하는 대략의 딸기바구니 수를 세고 그에 따라 벌어들일 경매 가격을 암산해서 아버지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농사일까지 부지런하고 야무진 그 손끝에서 움직였다.


 당연히 엄마의 장수는 행복한 선물 같았다. 그래서 해가 기울어 밤까지 일을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비쳤고 유난하게 돈을 아껴도 애써 말리지 않았다. 더 어리석게는 희미해지는 기억력을 보여 걱정은 되지만 ‘설마 우리 엄마는 아닐 거야!’ 하며 지나쳤다.      


 어느 날, 얼핏 치매라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마음이 여간 상한 게 아니어서 한동안 그 사람을 향해 엉뚱한 트집을 잡고 심한 욕까지 하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당황이야 됐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음식을 넣어둔 걸 잊어버리고 자꾸 만들고 넣어두기를 반복해서 냉장고 안이 상한 음식으로 가득했다. 눈치를 챈 건 잘한 일이지만 마음만은 막막했다.      


 지금은 ‘주간보호센터’라는 곳에 다닌다. 인지 치료 프로그램이나 식사 및 약복용까지 도움을 받을 곳이 생겨 가족은 물론이고 엄마도 만족한다. 그곳에서 나이 여든이면 제일 젊은 청춘이고 구십이 넘어야 그나마 언니 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장수가 대세다. 엄마는 중간쯤이니까 더도 덜도 아닌 반으로 깎아주면 좋으련만 지불할 세금은 어김없이 나왔다. 100세까지는 15년이나 남았는데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하면서 물리고 싶지만, 옛날에 비해 장수한 편이니 그 정도 세금은 당연한지 모르겠다.    

 

 검사를 통해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았다. 완치는 없다고 하니 천천히 진행되기만 바랄 뿐이다. 다만 치매를 앓는다고 너무 놀라거나 입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자식 자랑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사코 싫다면서 용돈은 좋아하며, 수치심을 느끼면 불같이 화도 낸다. 달라진 변화에 괜히 나서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존중하는 마음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자칫 나처럼 굴었다가 관계가 틀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속상한 나머지 생각 없이 말했다가 한동안은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 그래서 치매란다. 자연스러운 노화를 이렇게 가혹하게 표현해도 될까? 한자 뜻풀이가 그저 아쉽다. 평균 수명이 60세를 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만큼 바뀌어야 한다. ‘인지저하증’ 또는 ‘인지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늙음을 단순히 어리석고 미련하다며 비웃는 말투보다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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