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길 Oct 15. 2023

24.  정자 씨

 

 "하나도 걱정할 거 읎어. 징그럽게 일만 하다가 이제야 날개 달고 훨훨 날아갈 것 같어." 

 선녀도 아니면서 잃어버린 날개를 비로소 찾은 것처럼 좋아하며 말다. 훨훨 날아만한 곳이나 있는 걸까. 미륵탑 돌며 나들이 가던 고향은 사라졌고, 보고 싶은 영자와 금순이는 벌써 하늘로 갔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탄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 후에 정자 씨는 마을에 가서 노인복지로 하는 요가와 색종이 접기 같은 놀이활동으로 솔로 탈출을 즐겼다. , 고추, 고구마와 같은 작물을 심고 가꾸는 농사도 거뜬히 해냈다. 둘이서 같이 살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마을회관에서 형님같이 어울리던 어르신이 밭일을 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돌아가시고, 이웃 아주머니를 자식들이 요양원에 넣었다고 욕을 바가지로 날라도 끝내 돌아오시않는 일이 이어졌다. 정자 씨의 홀로서기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코로나는 유일한 탈출구인 마을회관과 주일마다 가는 교회마저 차단시켰다. 노인네들이 걸리면 죽는다니까 아무 데도 안 가야겠다고 하셔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했다. 점점 고립되는 시간이 늘면서 심심하다는 정자 씨의 하소연이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정자 씨의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들은 상의했다. 정자 씨는 결국 노인복지센터에 다니기로 했다. 처음에는 젊은 당신이 왜 가냐고 거부했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얼굴빛은 날이 갈수록 환하고 몸도 건강해졌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다니 것 같아 별걱정을 안 했다. 깜빡하는 일이야 나이 들면 누구나 있는 일이라 하루종일 돈봉투만 찾았다고 해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총기 넘치는 기억까지 세월 앞에서는 또 흐려졌다.


 그런데 가장 당황스러운 은 센터에서 알게 된 어르신과의 싸움이. 난 정자 씨 입에서 그런 걸걸한 욕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자기를 무시했다는 어르신과 주저 없이 심한 말을 했다고 한. 어릴 때와 반대로 보호자처럼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숙였다. 


 정자 씨는 예전 같지 않게 참지를 못한다. 불같이 화를 내면 딴사람처럼 변한다. 이러다가 센터에서 싸움쟁이가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



by 오솔길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자기 인생 같다고 좋아한 게 고작 몇 년이 안된다. 보상받은 것처럼 만족하던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말년에 와서는 심하게 꼬여버렸다. 그런 정자 씨는 마을과 떨어져 있는 외딴집에서 오늘도 혼자 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처음의 씩씩하날개는 점점 넓은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굽어만 간다. 이제는 외로움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갈수록 잡기 어려운 감정의 기복은 아마도 외로움이 불러온 것 같다. 그걸 당장에 해결하거나 채워주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무겁다. 여전히 정자 씨의 감정변화는 진행 중이라 언제 누구를 향해 폭발할지 몰라 긴장된다. 다만 몇 번의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 다행이다.


 감정은 패턴이다』은 말한다.  '모든 감정은 쓸모없는 게 하나도 없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딴사람처럼 질주하는 이유는 자기 보호 본능 때문이다.'


  이걸 인정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정자 씨가 선택한 감정의 결과다. 이 일로 정자 씨가 더 이상 상처받고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황판단이 빠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그 끈을 놓말라고 엄마 대신에 정자 씨를 부른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느슨해진 줄을 잘 조여가면서 연주하는 것처럼 감정도 조율이 필요하다.


  오늘의 책
『감정은 패턴이다』, 랜디 타란 지음


작가의 이전글 23. 아이돌급 벌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