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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May 30. 2023

14.  홀드, 홀드

『풀들의 전략』을 읽고

 간신히 버티며 벽에 딱 붙어 있다. 위를 향해 안간힘을 쏟지만 자칫하면 밑으로 떨어질 지경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중력을 거스르며 자라는 모습이 기특하다. 


 벽은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높았다. 그러니까 일부러 심은 것은 아닐 거고 그렇게 한다 해도 자라기엔 너무 비좁은 곳이다. 그런 불가능을 이겨내고 생명력을 길러냈으니 지나는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할 만하다.


 아마도 날아가는 홀씨가 너무도 우연히 그 좁은 틈사이에 떨어진 듯하다. 행운도 있었겠지. 흙먼지가 여러 번 날아들어 뿌리를 내릴만한 영양을 주었을 것이다. 녀석은 그곳에 단단히 몸을 풀었다. 잡초라고 누가 뽑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필 그런 곳이었을까.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건 천운이란다 애기똥풀아.


애기똥풀,  by 오솔길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일단 높은 곳이라면 무서워한다. 어렵게 등산을 더라도 정상의 기쁨느끼는 사람이다.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감이 몸을 굳게 만든. 소금산 출렁다리나 한탄강 잔도길이 멋있다고 아무리 권해도 고개부터 흔든다. 새처럼 날아오르는 페러글라이딩도 다 그림의  떡이다. 


 얼마 전에는 산에 갔다가 깎아지른 암벽을 만났다. 자연스럽지 않은 형태로 보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앞에서 위를 보고 서있거나 앉아서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다가갔다. 낭떠러지 벽을 누군가가 오르는 중이었다. 저걸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듣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보게 되니 아찔했다.


 그는 한 손으로 버티며 다른 한 손으로 더 위쪽에 있는 홀드를 잡으려고 팔을 뻗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위를 바라보며 그 모습에 열중했다. 그런데 당연히 어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여자 아이였다. 아이의 몸은 가벼웠다. 사뿐히 한 손으로 홀드를 잡고 오르더니 거꾸로 경사진 곳에 매달렸다. 꼭 박쥐가 매달린 모양이다.


 버티던 아이는 힘이 모자란 지 손을 놓쳤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아!' 하는 작은 탄성이 울렸다. 떨어지는 순간에도 아이는 사뿐히 줄을 타고 가라앉을 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위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도하겠다는 의지로 로프를 다잡기까지 다. 떨어질 때의 공포는 심장을 멈추게 할 정도라던데 용감한 아이가 참 대단했다.


  애기똥풀은 버틸 다리잡을 두 손도 없으면서 잘도 이겨낸다. 숨겨놓은 홀드라도 있는 것인지 뿌리로 꽉 잡았다. 겁쟁이 풀씨였다면 일찌감치 그런 장소는 포기하고 너른 야산이나 사람이 드문 길가로 다시 날아갔을 것이다. 쓸모없다고 뽑아버린 이도 없으니 아주 다행스럽다. 그래서 넌 당당히 노란 꽃까지 터트렸구나.


by 오솔길


 그래서일까. 다른 애기똥풀은 참깨나 고추가 있는 밭자락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거기보다는 길가나 야산자락에 수많은 후손을 번식시켰다. 노란 아기얼굴을 내밀고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있다. 잡초라는 오명으로 일찌감치 농약에 스러지지 않고, 영리하게 번식하는 방법을 스스로 알게 되었으리라. 

  줄기에서 노란 액체가 나오는 것이 아기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에 똥이 들어가도 아기똥이니 오히려 귀여운 편이다.


 『풀들의 전략』이라는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그 나라에도 우리와 비슷한 풀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풀들은 제각기 환경에 맞는 전략을 세우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로 못 보던 풀이 길가를 점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아남은 풀들의 성공담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애기똥풀은 이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아 아쉬웠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돌소리쟁이, 광대나물, 달개비, 박주가리 내가 산책길에서 가장 마주치는 풀들다.  


오늘의 책
『풀들의 전략』,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미카미 오사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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