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그냥 여기서 지낼까?
그 교실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부장은 현관에서 서쪽 끝을 가리키며 먼저 가보라고 권했다. 학교에서 교실 찾기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냐며 무조건 나섰다가 낭패를 보았다. 학교 안내도를 확인하지 않은 일이 후회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꺾어진 사이로 복도가 보였다. 그 복도 끝의 외진 곳이 바로 내가 찾던 교실이다.
한낮인데도 그곳은 어두웠다. 4개나 되는 스위치를 다 누르고서야 칙칙한 곳이 그나마 말끔하게 보였다. 밝은 베이지 톤으로 새로 바꾼 교실 바닥과 연한 노랑의 블라인드가 한쪽 벽을 감싸고 있었다. 그제야 리모델링을 해서 새 교실이나 마찬가지라는 부장의 말이 생각났다. 이중으로 된 넓은 창이 남쪽으로 났지만 밝은 기운이라고는 없다. 왜 서늘하고 음침해 보였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교실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이 병아리 모이 주듯 야박했기 때문이다. 창가로 이사 올 화분을 자동차 뒷좌석에 가득 싫었는데. 이곳에서 살 수나 있을까 걱정되었다.
거의 해마다 교실을 옮긴다. 마음에 쏙 들었던 남향 위치도, 시끄러운 계단 옆의 교실도, 그리고 화장실 냄새가 고역인 장소도 겪었다. 적응만 잘하면 힘들고 불편한 부분이 나중엔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진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나를 다독였다.
봄에 어울리는 연한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새로 들어올 신입생을 맞았다. 점잖은 옷차림에 밝은 미소를 연신 지으며 아이들 앞에 섰다. 분주한 학기 초 업무가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몰아갔다. 이른 봄옷 때문인지 꽃샘추위에 그만 꺾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음침한 교실 분위기 때문이지 으슬으슬 추웠다. 나는 교실 탓을 하며 다시 옷장에서 겨울옷을 꺼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 곳이다. 나만이 아니라 창가에 놓아둔 식물도 그걸 느끼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제라늄이 제빛을 잃기 시작했다. 이사할 무렵의 짱짱했던 줄기는 광합성을 위해 본능적으로 기울고 가늘어졌다. 목숨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보였다. 꽃이 피기는 커녕 옹골차게 자라는 새잎마저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들시들하다. 식물이 그들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 사이에 나는 병이 났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 번 걸린 감기는 나를 끌어안고 질기도록 오래가더니 여름까지 끌고 다녔다.
모순 같아도 아이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듯 활기가 넘쳤다. 음침한 곳조차 자신들만의 세계로 만드는 재주가 놀라웠다. ‘무조건 달리기’와 ‘그냥 뒹굴기’ 같은 놀이를 만들어 내며, 교실은 순식간에 즐거운 비명과 장난으로 가득 찼다. 그들만의 리그로 교실이 혼란의 광장으로 변하는 데는 며칠이 안 걸렸다. 초반의 질서유지를 위해 나는 웃음기를 감추고 기강 세우기에 전념했다.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모양이다. 뜻하지 않는 일이 순식간에 발생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아이들만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단순한 몸싸움인 줄 알았다가 피를 흘리는 친구를 보고 순식간에 공포감을 느낀 아이는 덜덜 떨고 있었다. 턱이 깊게 찢어져 피가 흘렀는데 붉은 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아수라장이었던 교실은 금세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날부터 달갑지 않은 심판이 된 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다 중단시켰다. 아무리 원망의 눈초리가 나를 향해도 모른 척했다.
그렇지만 내 기대는 얼마 못 갔다. 허망하게 하루를 못 견디고 또 일렁거린다. 실실 웃어가며 봄바람을 잔뜩 묻혀와서는 나만 바라보며 웃는다. 무너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표정을 관리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다못해 책상과 바닥 그리고 내 자리 쪽으로 와서는 히쭉 웃으며 봄 내음을 줄줄 흘린다.
시간의 흔적은 참으로 묘하다. 벚꽃이 지고 민들레가 흔들리는 동안, 각지고 딱딱하던 교실은 겉모습과 달리 점차 부드러워진다. 모난 곳이 사라지고 둥글게 마음을 품기 시작한다. 천방지축 아기 티가 물씬 풍기던 아이들도 조금 아주 조금씩 변한다. 연필이 없다는 소식만 들려도 일어나기 바쁘고, 오전에 다투고 울던 사이가 분명한데도 점심시간이면 블록 놀이하며 키득거린다. 가끔은 그 맑은 에너지가 나를 향해 훅! 하고 전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답답하던 가슴이 환해진다.
기침은 여름이 되고 겨우 누그러들었다. 아무도 없는 오후가 되면 열린 창문으로 운동장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고요해서 좋아질 때다. 알아보지도 못하게 휘갈긴 국어책을 점검하고, 발랄한 주인들이 외면한 연필과 지우개,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린 산만한 흔적을 정리한다. 또 나이스란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고, 칙칙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던 나는 이곳이 점점 편해지고 정이 갔다. 내년에도 그냥 여기서 지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