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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Dec 08. 2021

내가 잘할게



고양이를 좋아한다. 덕질만 10년 했다. 키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털 날리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한 생명을 책임을 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솔직하자면 책임지기 싫어질까 봐 망설였다.


올여름. 고양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나이 들면 놀아줄 기운이 없을 것 같아서 결심에 결심을 했다. 지역 병원에서 임시 보호 중인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안락사가 예정된 새끼 고양이였다.


데리고 온 첫날. 손바닥보다 조금 큰 고양이는 장롱 밑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작은 데다 까매서 어딨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밖으로 나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장난감을 흔들어주니 작은 팔을 휘두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한참을 놀다 자다, 숨었다 나왔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편히 대했고, 그러다가도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등과 꼬리의 털을 부풀리고 옆으로 통통 - 튀어 다녔다. 이럴 땐 나도 영문을 몰랐다. 단지 귀여워서 날 보며 또 놀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함께 산 지 반년이다. 잘 때는 침대에서 붙어 자지만 아직도 가끔 서로를 내외하기도 한다. 서로라고 표현했지만 고양이가 일방적으로 외면할 때가 많다. 고양이가 이 글을 볼리 없으니까 내외라고 써서 관계의 균형을 맞춰보기로 한다.


막상 고양이와 살아보니 덕질했을 때 상상했던 것들과 다른 점들이 많다. 먼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다양한지 몰랐다. 성대를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뾰족한 소리, 둥근 소리, 투박한 소리 등 형태가 다른 여러 소리를 낸다. 또  높낮이의 변주가 드라마틱한데 한옥타브는 너끈이 넘나들 정도다. 어떤 소리를 내든 대부분 듣기 좋다.  또 고양이가 달릴 때 말 달리는 소리가 -다그닥 다그닥-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키우기 전에는 고양이의 발에 달린 쿠션, 일명 젤리 때문에 달려도 소리가 거의 안 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눈매와 동공이 자유롭게 형태를 바꾸다 보니 표정이 알던 것보다 훨씬 풍부해서 나도 모르게 고양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신경전을 자주 벌이게 된다.


고양이는 종종 자기 물을 두고 내 물컵에 얼굴을 담근다. '이건 내 물이야'라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질 않는다. 또, 화장실 주변의 모래를 쓸어 담으려고 한 곳에 모아두면 고새를 못 참고 흐트러뜨린다. '잠깐만! ' 급하게 외쳐보지만 '잠깐'과 '만'사이에 일을 벌인다. 그것뿐인가. 집에 혼자 있을 고양이가 걱정돼서 봐야 할 서류를 챙겨 일찍 퇴근할 때가 있다. 한참을 놀아주고 고양이가 늘어질 때쯤 서류를 펼친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배터리인 건지 고양이는 '완충 모드'로 책상에 뛰어올라 종이를 잘근잘근 씹는다. '한 시간만 봐줘. 미안. 응?' 읍소를 해보지만 결국 몇 페이지는 뜯겨 나간다. 그럴 때면 꽤 피곤하다. 어쩌겠는가. 내가 같이 살자고 불렀으니 감당할 수밖에.


요즘은 나의 컨디션이 아쉽기도 하다. 고도근시에 난시까지 있어 삼십  가량 안경을 쓰거나 렌즈를 끼고 살았다.   전부터는 노안까지 왔다. 그래도 여태껏 일상생활을 하면서는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보다  배가량 작기 때문에 종종 안경을 벗어야   있는 일들이 있다. 발톱을 깎아줄 , 양치를 시킬 , 턱밑의 피지를 제거할 때가 그렇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번거로운 일이 된다. 가장 안타까울 때는 자기 직전이다.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안경까지 벗었는데 고양이가 방문 앞에서 나를 바라볼 때가 있다. 어슴푸레한 형태는 보이지만 어떤 표정인지, 어떤 눈빛인지  수가 없다. 다시 안경을 끼고 고양이와 눈을 맞춘다.  누워 있는  등허리께 엄지손톱만  공을 물고 와서 놓아두기도 하는데 안경을 써야 공을 찾을  있다. 가끔 이불속을 파고들어  발을 부드럽고 작은 양팔로 감쌀 때는 정말이지  검고 둥그런 몸을 깨끗하게 보고 싶은데 안경을 찾는 사이 이불을 빠져나가 버린다. 무서워서 라식 수술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40 라식' 검색하곤 한다. 맨눈으로, 언제라도 고양이를 보고 싶어서.


우리, 어쩌다 만난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사이좋게 잘 지내자.

내가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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