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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Dec 06. 2021

그날의 골목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


팀원과 다투고 홧김에 일찍 회사를 나왔다. 합의를 해야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 팀원 중 한 명이 먹통처럼 굴었다. 세계 먹통 대회가 있다면 기필코 1등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 듯 의연하고 담담하게 고집을 피웠다. 직급 가리지 않고 양반도 상놈으로 만든다는 김 먹통 씨의 일화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김 먹통 씨의 먹통 짓은 만인 앞에 평등했다.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나는 피할 수가 없었다. 한 팀이 됐으니까. 게다가 김 먹통 씨가 나의 상급자였으니까. 이것이 직장인의 숙명 아니겠나. 직장인이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주 동력원이 아마 '김 먹통 씨' 같은 동료일 것이다. 


김 먹통 씨와 회의가 힘든 점은 혼란스럽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분명 '에베레스트 등반법'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김 먹통 씨만 거치면 ' K2 등반법'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에베레스트고, K2 간에 어떻게 올라갈 건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으라 하면 '패딩 구매법'으로 넘어간다. 속으로 놀란 적도 있다. 의식의 흐름이 일곱 살 아이처럼 자유롭구나. 또 궁금하기도 했다. 일곱 살의 세계관을 가진 사십 대의 중견 관리자는 어떻게 조직에서 살아남았을까. 알고 보니 김 먹통 씨의 상급자 인사권까지 휘두를 수 있는 거대한 낙하산을 타고 20년째 순항 중이라고 했다.


부서이동을 거쳐 내가 속한 팀의 관리자로 발령받은 김 먹통 씨. 그 바로 아래 직급이 나였다. 그 말은 곧 내가 그를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소문으로 듣는 그는 이야기가 끝나면 휘발되었지만 팀원이 된 이상 그는 내 일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의 존재는 나에게 고통과 울분, 억울함을 몰고 왔다.


김 먹통 씨를 겪으며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피가 끓는다'는 표현이 체험에서 비롯된 관용구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와 두어 시간 회의를 하다 보면 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피가 끓어 그 열감이 피부를 뚫고 나온 것이다. 


데드라인을 앞두고 회의가 잡혔다. 김 먹통 씨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회의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 회의에서도 결론을 짓지 못하면 부서 상급자는 나를 탓할 것이다. '우리 팀 책임자는 김 먹통 씨인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냐'라고 따져 물어봤자, '먹통 씨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냐. 알면서 그런 말을 해. 그러니까 단발 씨가 빨리 판단하고 처리해줘야지.'라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했다. 김 먹통 씨는 일관적인 사람이다. 언제나 그렇듯 주요 주제를 변환했다. 다시 끌어오면 마지못해 알겠다고 한다. 그다음 세부 조항별로 세네 번씩 이 짓을 반복했다. 정리해야 할 사안이 다섯 개. 세 개는 확정했고, 두 개 남았다. 조금 안심하던 그때. 갑자기 김 먹통 씨가 다시 주제를 변환했다. 


"이거 꼭 에베레스트로 해야 하나? K2로 다시 생각해보자."


그날 회의에서 논의된 세부 조항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여러 부서와 협의를 거쳐 마련한 방법이었다. 전체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방법까지 확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다시 처음부터라니.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졌다. 심장에서 용암처럼 뜨겁고 살벌한 열기가 쏟아졌다. 그 열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지금 뭐하시는 거냐. 여태껏 이 사안을 몇 번 의논했냐. 당신도 동의했던 것 아니냐. 당장 내일 윗선에 보고해야 하는데 뭐라고 할 거냐. 다른 부서에는 뭐라고 할 거냐. 어쩌고 저쩌고.


팀원들은 침묵했다. 정적을 깨고 먹통 씨가 입을 열었다.


"여태껏 단발 씨가 하자는 대로 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난 의견을 낸 건데. 이렇게 화를 내면 무슨 말을 하겠어. 그러면 단발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마무리해요."


내가 하자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 독선적인 태도로 일하는 게 못마땅하다. 일이 잘못되면 네 책임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김 먹통 씨가 회의실을 나갔다. 팀원들은 '단발 씨가 조금만 참지 그랬어'라는 싸늘한 눈빛과 '먹통 씨,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괜찮아'라는 위로와 '그래도 결론은 났잖아'라는 말, 그 뒤에 숨겨진 '이제 남은 건 니 몫이야'라는 의미를 남긴 채 자리를 떴다. 


머리가 아팠다. 짐을 챙겨 일찍 회사를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내려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 어느 모퉁이까지 가야 집이 나온다. 그 길에서 본 하늘이 예뻤다. 붉긋붉긋한 석양이 온 동네에 깊게 내려앉았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늘은 왜 예쁘고 난리야.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순간 외로웠다. 분노의 용암이 식고 나니 회의 끝에 몇몇 팀원이 보낸 싸늘한 눈빛과 이번 일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화산재처럼 켜켜이 쌓여갔다. 심란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날따라 만날 사람도 없고, 전화를 받는 사람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골목을 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이 골목, 이번엔 저 골목. 한참을 걸었다. 가로등이 '나 여기 있다'라고 빛을 뿜고, 편의점과 카페는 '여기로 오세요'라며 반짝이고,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의 창가에서도 '우리 집은 저녁 먹어요' 라며 음식 냄새와 함께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주변 풍경이 반짝일수록 더 외로웠다. 


저기 저 집에 사는 아저씨도 이 골목을 헤맨 적이 있었겠지. 지금 지나가는 저 아주머니도 집 앞에서 방황했던 적이 있었을 거야. 저 학생은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 나온 적도 있을 걸. 저 사람들에게도 이 먹통, 윤 먹통 씨가 있을 거고, 무심한 동료가 있을 거야. 


이렇게 나를 위로하며 집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보지도 않을 티브이를 켜고 맥주를 마시는데 전화가 왔다. 부재중이 떠있어 전화했다고. 무슨 일 있냐고. 친구였다. 아무 일 없다고.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전화해봤다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김 먹통 씨 욕을 하고, 팀원들 욕을 하고, 나도 좀 참을 걸, 반성도 하고. 나 이제 어떡하냐, 하소연도 하고. 시답잖고 친숙한 수다를 한참 떨었다. 전화를 끊고 남은 맥주를 마시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유로 길을 헤매겠지. 그때, 너무 오래 헤매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야기할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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