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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Dec 03. 2021

스핑크스 부장

<질문에 답하지 못한 자, 호통을 받을 지어다.>


앙상한 두 다리가 아침에 네 개, 점심에 두 개, 저녁에 세 개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면서 회의 때마다 늘 퀴즈를 내는 스핑크스 부장. 스 부장의 퀴즈는 크게 두 종류다.


1. 스피드 퀴즈

2. 내 마음을 맞춰봐


사실상 심리전이 주요하다.


<스피드 퀴즈>


스 부장은 충동적이다. 종종 기습적으로 팀원을 불러 모은다. 얼결에 불려 간 팀원은 초긴장 상태로 스 부장의 입만 쳐다본다.  


스 부장이 질문을 하면 팀원은 즉각 대답을 해야 한다. 3초 이상 머뭇대면 호통이 이어진다. 그래서 스 부장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일단 소리부터 내고 본다. 장학퀴즈에 나온 학생이 재빨리 손을 들어 '정답'을 외치는 타이밍. 바로 그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일은 퀴즈 프로그램이 아니다. 실상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을 때도 많다.


명문대를 나오고, 수석인지 차석인지.. 여하튼 상위 성적으로 입사했다는 스 부장은 영민하다. 팀원의 대답 속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 무엇을 감추려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부분을 파고든다. 스 부장은 집요하다.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대답을 할 때까지 되풀이한다. 당하는 사람은 피가 마른다. 스 부장은 목청이 좋다. "여태껏 뭐 한 거야!" 고성으로 마무리될 때가 많다.  


스 부장의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팀원들 대부분 언제쯤, 어떤 걸 물어보겠구나, 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미리 회의 준비를 해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스 부장은 한 발 빠르게 회의를 소집한다. 어떤 때는 오전에 지시하고, 오후에 시행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여러 부서 상급자들의 의견을 받아야 하는 일인데 서너 시간 만에 될 리가 없다. 그럴 때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풀이하고 싶어서 일부러 회의하는 걸까?'


<내 마음을 맞춰봐>


스피드 퀴즈가 멘탈 싸움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심리 싸움이다. 답정너의 전형적인 퀴즈 타임이 시작된다. 이때 스 부장의 퀴즈에는 서사가 있다. 대의명분을 내세워 팀원의 동의를 얻는다. 그다음 여러 가지 고려할 사안을 늘어놓는다. 이때 주로 등장하는 고려할 사안은 업계 전반적인 분위기, 팀원들의 스케줄 등 일반적인 것들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프로젝트의 세부적인 방향을 설정할 때부터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색칠공부 프로젝트가 있다고 치면 이런 식이다. 스 부장이 먼저 운을 뗀다.


"전체적으로 어떤 색을 칠하면 좋을까?"

"청색이 어떨까요?"

"청색은 좀 칙칙해. 봄이기도 하고, 대세가 노란색이니까 .. 노란색 어때?"

"부장님. 노란색 너무 좋습니다. 너무 좋은데.. 요즘에 청색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청색이 어느 때보다 대유행하는 시기다. 윤 과장이 스 부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알려주면 스 부장은 우기기 시작한다.


"아냐. 윤 과장이 잘 몰라서 그래. 노란색은 색칠공부의 스테디 컬러야. 그리고 노란색 싫어하는 사람 봤어? "


팀원들은 침묵하기 시작한다.

그때 스 부장은 팀원들 한 명, 한 명에게 묻기 시작한다.


"단발 씨는 어떻게 생각해?"

"시야를 좀 넓게 가질 필요가 있어. 당장 유행하는 것만 따라가면 늘 뒤처질 수밖에 없지. 안 그래?"

"청색으로 해야 하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나? 논리적인 근거는?"

"봄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색이 뭐야?"

"그래도 청색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감 없이 얘기해. 디베이팅이 중요하니까."


스 부장이 주도하는 "디베이팅"을 거쳐, 결국은 노란색으로 결정된다. 모두의 동의를 얻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다. 뫼비우스의 띠에서 달리기 하는 것처럼 지겹고, 어지러운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빨리 정답을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것대로 스 부장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자기 눈치 보지 말라고. 자기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며, 얼마든지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럴 거면 회의는 왜 하냐고.


뭐 어쩌라는 건지, 싶은 표정을 감추고 최적의 타이밍에 스 부장의 의견에 동의를 표한다. 이때 동의하는 이유도 적절해야 하는데 이 대목이 가장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대부분 스 부장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찬성하기 때문에 발언 순서가 뒤로 밀릴수록 할 말이 떨어진다. 정 할 말이 없으면 진정성 있어 보이는 표정과 눈빛으로 간결하게 마무리하는 게 방법이라는 것도 몇 차례 회의 후에 터득했다.


스핑크스는 사람들을 상대로 수수께끼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그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과 귀가 밝은 사람은 살아남았을 것이다. 스 부장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퀴즈를 내고, 맞추지 못하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눈치 빠른 사람이 살아남는다. 몇몇 팀원은 밤마다 스 부장을 모시고 술을 마셨다. 예상 문제를 미리 알아내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스 부장과의 마지막 회의가 10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완전히 잊고 살다가 얼마 전 건너 건너 스 부장의 소식을 들었다. 추문에 휘말리며 한직으로 유배를 떠났다고 한다.


스 부장이 지키던 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와 궁금하다. 그 문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출세였을까. 자아였을까. 아니면 생존이었을까. 스 부장만큼 나이를 먹고, 경력을 쌓은 나에게 남은 마지막 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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