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발 Dec 02. 2021

영여와 꼭두

<영혼을 싣고 가는 가마, 영여>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 - 꽃상여와 꼭두의 미학'


피안. 꽃상여. 꼭두.


얼핏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다. 전시실에 들어섰다. 가마의 1/5 쯤 되는 크기의 뭔지 모를 가마가 줄줄이 보였다. 사람을 아무리 접어도 탈 수 없는 크기의 가마에는 정사각형 나뭇 살에 창호지를 바른 손바닥만 한 입구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자물쇠가 새끼손톱만 한 고리에 달려있었다. 궁금했다. 저 가마는 어디에 쓰는 걸까?


'영여'

저 가마의 용도는 영여,라고 했다. 영혼을 싣고 가는 가마라고 했다. 처음 들어봤다. 저런 용도로 만들어진 물건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알고 싶었다. 저 가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누구를 위해 만들었을까. 누가 탔을까. 


지식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영여는 혼백(魂帛)을 옮기기 위해 만든 가마이다. 혼백은 돌아간 이의 영혼이 깃든 물건이기에 주검을 옮기는 상여와 따로 분리한 것이다. 두 명이 메듯이 앞뒤로 끈을 가위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두 손으로는 가마채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에는 혼백상자, 향로, 영정 따위를 싣는다. 가마채의 높이가 허리 정도이기 때문에 요여(腰輿)라고도 한다.


사람은 죽으면 혼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 이를 신혼 체백神魂體魄이라 한다.

신혼은 혼백이나 신주에 의지하여 사당에 모셔지고, 체백은 무덤에 모셔져 흙이 된다. 혼백은 죽은 이의 영혼이 깃든 것이기에 시신을 옮기는 상여와 따로 분리한 것이다.


라고 적혀 있다. 


전시된 여러 개의 영여는 비슷한 크기였다. 지붕 모양, 색감, 구조는 조금씩 달랐다. 만든 사람의 취향일까. 타는 사람의 취향일까. 누가 탈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영여를 살펴보았다. 영여의 구간이 끝나고 모퉁이를 돌자 상여가 나타났다. 삼베로 덮여 있는 상여에는 성황당에나 걸려 있을 법한 파랑, 빨강, 노랑 천이 드리워져 있었고 종이로 만든 꽃이 달려 있었다. 상여 앞뒤판과 측면에 손바닥만 한 목각 인형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인형은 생김새도 다르고, 자세도 달랐다.  그 인형을 '꼭두'라고 했다. 


'꼭두'는 '인형'이라는 단어 이전에 쓰이던 순우리말이란다. 15세기 활자 책 『석보상절』의 '곡도'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든 물건'을 칭하는 말이란다. 장난감이나 주술 도구로 쓰이는 등 용도가 다양했으나,  19~20세기경 상여 장식에 주로 쓰였단다. (꼭두박물관 소개글 참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망자를 만나 저승세계를 안내한다는 꼭두. 저승으로 가는 길에 악귀를 물리치기도 하고, 길잡이도 하며, 망자가 외롭지 말라고 붙여 둔 것이란다. 형태는 다양했다. 사천왕, 스님, 아이, 광대 모양의 꼭두도 있었고,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순사 모양의 꼭두였다. 당시에 가장 두려운 존재를 꼭두로 만들기도 했다니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일본 순사인데, 그걸 붙여두면 망자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상여에 붙은 수십 개의 꼭두는  웃고 있고, 울고 있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고, 뒤돌아 선채로 자리를 지켰다. 가만 보고 있으니 꽹과리 소리, 북소리, 나팔 소리, 곡 소리가 들렸다. 상여를 이고 흙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갈 때 꼭두라도 같이 가겠지. 다행이다. 


근래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한 번씩 죽음의 순간이 찾아올 때 죽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찾아올지,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때를 맞이할지, 또 내 곁에 누가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지금 상태라면 혼자 그 순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꼭두에 유독 눈길이 갔던 것 같다.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그 순간은 나도 영문을 몰라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니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곳에서 아주 마지막의 시간을 상상했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자기 연민에 빠져 마음이 법석을 떨었다. 외로워서 그랬다. 


각자가 각자의 모퉁이에 서있다. 거기에서 벗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거기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나를 포함해서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모퉁이에서 길을 잃었다.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잠 못 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와 그들의 밤을 지켜주는 꼭두가 있었으면 좋겠다. 저승으로 가는 것만 빼고 말이다.




1. 그림은 어느 전시관에 놓인 영여를 본떠 그렸다. 채색은 바꾸었다.








 







작가의 이전글 본태 박물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