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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Dec 02. 2021

본태 박물관

<제주도, 본태 박물관>


한 달 전, 1년 만에 제주도에 갔다. 여태껏 열 번 정도 갔으려나. 대부분 혼자 다녀왔다. 뚜벅이라 올레길로 만들어진 제주도 테두리의 일정 구간을 훑거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해도 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실제로 다니는 구간은 한정적이었다. 도보로 3-4시간 거리, 15km 내외가 전부였다.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명 관광지는 피해 다녔고, 사람 없는 숲길이나 바닷길, 포구 어귀에 앉아 있는 걸 좋았으니까.  그런 곳은  많으니까.


이번엔 달랐다. 무릎이 아팠다. 걷기 싫었다. 버스정류장까지 10분을 넘게 걸어가야 하는 어떤 숲길에서 몸이 힘들어서  걷기가 싫어지니 갑자기 신세타령으로 이어졌다. 나이 먹고, 운전도 못하고, 혼자 오니까 이 모양이지. 별것도 아닌 일이 한탄으로 이어지는 걸 보니 그 상황이 어지간히 싫었던 것 같다.  


며칠 후. A가 내려왔다. A의 휴가 기간에 맞춘 여행이었다. 할 일 없는 내가 먼저 내려와서 다니고 있던 터라 A가 오는 날, 숙소 앞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낯선 곳에서 친한 사람을 데리러 가는 길이 조금 설레기도 했다.  


A는 운전을 잘한다. 그 친구도 작년에 운전을 시작했으니 꽤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능숙하다. 몹시 부럽다.

여행 말미에 A는 차를 빌렸다. 걷거나 버스로 다니면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달렸다. 아름답고 시원하고 빨리 사라지는 길. 속도도 풍경의 한 요소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터널을 달리는 케이티엑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명의 나열도 가끔 예술적으로 보일 때가 있으니까.  A가 내게 가고 싶은 데 없냐고 물었다. 딱히 없었다. 그때 A가 '본태박물관'에 가자고 했다. 내가 '돈테?'라고 되물었다. 여러 차례 제주도를 다녀왔지만 처음 들어 본 이름이었다.


'본태 박물관'

박물관 입구는 고급 주택의 입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콘크리트 벽으로 감싼 주차장, 주차장에서 매표소로 이어지는 건조하고 단단한 계단,,,, 실은 고급 주택을 가까이 본 적이 없어서 구체적인 설명은 못하겠다. 영화에서 본 게 전부다. 그런데도 그냥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섯 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된 박물관.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역시 설명은 못하지만 고급 주택 같은 느낌의 건물들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정원 가장자리에 내려앉아있었다. 처음 들어갔던 곳은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고, 두 번째 갔던 건물에서 커다랗고 노란 호박 조형물을 보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쿠사마 야요이'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이란다. 그 작가가 만든(?) 무한 거울방은 이번 제주 여행에서 손꼽을 만큼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바닥도 없고, 천정도 없고, 벽도 없는 캄캄한 공간에 수천, 수만 개의 빛이 반짝인다. 빛의 부대가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천천히 색을 바꿀 때면 가만히 서있는 내 몸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2분의 관람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눈을 서너 번쯤 깜빡거린 것 같다.


메모를 좀 해둘걸. 기억에 의지해서 쓰려니 가물가물하다. 여하튼 계속 기억을 더듬어보겠다.


무한 거울방 다음으로 인상적인 공간은 건축가를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는 2층 건물이었다. 백남준 비디오 아트도 있었다. 이 건물은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듯한 부내 나는 사적인 공간 같았다. 마룻바닥이 깔려있다는 점이 그랬고, 거실과 방으로 나뉜 듯한 구조와 각 공간을 인테리어로 활용될 수 있는 예술품, 그림과 가구 등으로 장식해 둔 점이 더욱 그랬다. 공간을 넘나들 때마다 마치 각 공간마다 분명한 기준이 있는 취향의 주인이 있는 것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전시라기보다 장식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특히,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과 계단 옆에 단단히 박혀있는 쇠로 만들어진 난간이 인상적이었다. 촘촘한 살로 이어진 난간을 붙잡고 올라가니 마치 난간이 내 손을 잡고 지탱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정적이고 단단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이 건물은 직선과 직선. 그 사이를 벌리고 조이는 구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그 자체로 그림 같았다. 콘크리트 벽 사이로 보이는 잔디와 나무. 건축가는 이 장면을 염두에 뒀구나. 2층은 거실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에 전시실이 마련돼 있었다.


우측인지, 좌측인지 한쪽 공간에 백남준 비디오 아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에 본 적이 있어서 그런 건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쓱 보고 나왔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건축가를 소개한 공간이 펼쳐진다. 거기에 적혀 있는 안내문을 보고 본태 박물관이 '안도 타다오'라는 일본인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건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건축계의 노벨상을 탄 천재라고 하더라. 될될의 전설적인 인물이구나.


건축가를 소개하는 공간에서 또 다른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는 초입에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다. 일곱 살 조카가 그린 것처럼 서툰 스케치였는데 배 모양이었던 것 같다. 그 배에 될될 끝판왕, 안도 타다오 사진이 얼굴만 떼어져 붙어 있었고,  그 양옆으로 몇몇의 얼굴이 있었는데 내가 알아본 사람은 김수현 작가뿐이었다. 그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왜 김수현 작가가 같이 있는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그림을 기점으로 내부로 들어갔다. 직각으로 만들어진 달팽이집처럼 좁고 짧은 복도가 계속 이어졌다. 모퉁이 끝에 다다를 때마다 여기를 꺾으면 어떤 공간이 펼쳐질까 궁금했다. 돌고 돌고 돌아 어떤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공간이 나왔다. 천정에는 바닥보다 좁은 정사각형의 창이 뚫려 있었다. 하늘이 그림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어쩐지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고 싶었다. 실제로 꿇어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허리가 아파서 금방 일어났다. 누워서 보면 더 좋겠다,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 같아서 눕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막다른 길. 막다른 길. 한옥의 뼈대와 구조를 그대로 살린 공간도 있었다. 나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바깥으로 나왔던 것 같다.  바깥으로 나와서 걷다 보니 저 그림 속의 공간을 보게 됐다. 직선과 직선. 견고하고 높은 직전. 낮고 오밀조밀한 기와로 만들어진 직선. 그 사이를 흐르는 얕은 물. 물에 비치는 엷은 직선. 직선 사이로 비치는 햇빛.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얼른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는 전체적인 공간을 담을 수 없었다. 핸드폰으로 찍어서 그런 건지, 구도를 못 잡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부밖에 담을 수 없었다.


이곳은 건물과 풍경도 작품이구나. 각 건물이 심어진 (실제로 건물이 땅에 심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리도 미술이구나.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또 다른 전시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수백 개의 반상과 목침, 조각보가 모여있었다. 비슷비슷한 크기, 비슷비슷한 용도로 만들어진 수백 개의 작품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결국 비슷한 것은 물건이 만들어진 용도 외에 하나도 없었다. 크기, 색감, 방식이 모두 달랐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각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세심하고 다양한 형태의  물건들이 만들어질 리 없다. 기능만 추구했다면 점점 편리한 방향으로 만들어졌겠지. 사이즈가 달랐거나 소재가 바뀌었거나. 더 검은색, 덜 검은색. 나뭇결을 살린 것. 그렇지 않은 것. 각이 있거나 없거나. 각을 둔다면 사각인지, 오각인지 육각인지 고민해서 나눌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바느질도 마찬가지다.  땀의 크기, 색감, 조직을 달리할 필요가 없다.  저 목침, 저 조각보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개성이 뚜렷했다.


이 많은 생활 예술품은 누가 수집했을까. 어떻게 수집했을까. 할머니 집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저 목침과 반상은  누구에게서 받아온 걸까. 물건의 주인은 저걸 기증했을까. 처분했을까. 처분했다면 그 사이에 흥정이 있었을까. 그 흥정은 돈이었을까. 가치였을까. 정이었을까. 무심함이었을까.


온갖 상상을 하며 전시품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전시실로 들어섰다. 전시실 앞에는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 - 꽃상여와 꼭두의 미학'이라는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피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단어인데 무슨 뜻이었지?'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1. 원래 본태 박물관과 영여를 묶어서 정리하려 했는데 본태 박물관이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

그래서 영여, 는  다음에 적기로 한다.


2. 위 그림은 방문 당시 촬영한 사진을 아이패드 그림 어플을 이용해 베껴 그린 것이다. 구도와 건물 색감은 거의 그대로 따라 그렸고, 하늘색은 맑은 오후 시간대에서 노을 질 때로 바꿔 채색했다.  


3. 본태 박물관 의 '본태'는 '본래의 형태'라는 뜻이란다. 여행을 다녀온 뒤에 검색해서 알았다. 이름도 작품의 일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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