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발 Dec 17. 2021

상념 에너지

<생각으로 에너지를 만든다면>


'생각이 꼬리를 문다'는 표현이 의태어처럼 느껴진다. '생각'은 형태가 없지만, 그 연쇄성을 떠올리면 기차 같기도 하다. 실제 기차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노선 이탈이 잦고,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노선으로 갈아타기도 한다. 또, 감정에 따라 폭주할 때도 있으며, 끝내 도착할 수 없는 종점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도 한다. 


내 생각은 목적지가 없을 때가 많다. 노선을 만들면서 달리는 기차인 셈이다. 내가 왜 달리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생각의 잔상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한마디로 잡생각이 많다. 


어느 날, 로또에 당첨되면 그걸 어떻게 분배할지를 놓고 거의 밤새워 고민한 적이 있다. 치열한 생각 끝에 가족과 지인에게 돌아갈 분배금을 나누었는데, 각자에게 돌아갈 금액의 기준을 만드는 게 꽤 까다로웠다. 그다음, 나머지 금액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나니 나름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았는데 출근 시간 10분 전이었다. 악 -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양치를 하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그때 나는 로또를 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느 날은, 자꾸 시비를 걸어오는 동료와 전쟁을 벌이기로 하고 전략전술을 짜기 시작했다. 먼저 동료의 공격 시나리오를 예상한 다음, 거기에 맞는 대응책을 만들었다. 극적인 승리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과 대사를 만들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까지 생각해두었다. 이만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나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곧 출근해야 하는데 잠이 쏟아졌다. 쪽잠을 자고 완전무장한 상태로 사무실에 입성했다. '동료여. 어서 나의 뺨을 쳐라. 모든 준비는 끝났다.' 비장한 심정으로 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공격은커녕 평소와 다르게 나를 살갑게 대했다. 그는 다음 날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갑자기 조급증이 생겼다.  '내가 그의 뺨을 쳐야 하나? 칠 명분이 없는데??'  고민하다가 전술집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상황이 종료됐다. 망할. 


오늘로부터 가장 가까운 새벽에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아침을 맞았다.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생김새, 말투, 성격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웃음소리가 청량한 그 사람. 눈빛이 깊은 그 사람. 매사 논리적이고 선명한 그 사람. 같이 있으면 그냥 좋은 사람.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은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바람도 에너지가 되는데, 생각을 에너지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과 생각이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생각은 물리적인 에너지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동력이 되고, 그게 모이면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으니까 언젠가 생각이 물리적인 에너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때가 온다면 인류가 존재하는 날까지 에너지 걱정은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생각만 모아도 올 겨울 난방기구는 돌릴 수 있겠다' 싶다. 

작가의 이전글 한밤의 취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