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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Sep 08. 2022

빛나는 밤

                                                                <반짝반짝 빛나는>



태어나 살던 곳을 떠나와서야 고향이 생겼다. 그러고도 한참 지나서 고향에 가는 기분을 알게 됐다. 갈 때는 설레지만 떠나올 때는 눈물이 나는 곳. 그래서 또 가기가 망설여지는 곳. 그럼에도 가는 곳. 


2년 전인가.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어느 날. 바람은 차고 볕은 뜨거운 고향으로 갔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엄마는 조금 더 작아졌고, 키가 크고, 덩치도 컸던 아빠는 홀쭉해져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주름은 깊어지고, 기운이 없었으며, 작은 목소리로 툭탁거렸다. 


셋이 밥을 먹고, 기차를 타고, 사진을 찍고 놀다가, 둘이 커피를 마시고, 손을 잡고 한참 걸었다. 그러다가 혼자 집을 빠져나왔다. 고향에 갈 때마다 만나는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 친구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녔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묻길래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옳다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도로와 바다가 붙어있는 길. 검은 밤바다는 끊임없이 요동치지만 중력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로 무겁게 움직였다. 뉴튼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았다지만, 바다를 먼저 봤다면 바다에서 우주의 법칙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넉을 잃고 바다를 보고 있는데 친구가 차를 세우더니 내리란다. 나는 차 안에 있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나와보란다. 할 수 있나. 내려야지. 멀리 등대가 보인다. 등대가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세상에.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묘한 색깔의 어두운 하늘에 흰 구름이 덩실덩실 떠있었다. 소리 없는 축제가 벌어졌다.    


등대에서 방파제로, 방파제에서 도로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차를 타고 좁고 가파른 달렸다. 차창으로 어두운 바다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그날 밤. 한숨도 못 자고 고향을 떠났다. 


며칠 전. 급히 고향으로 향했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작은 엄마는 조금 더 작아졌고, 홀쭉한 아빠는 조금 더 홀쭉해졌다. 이번에도 셋이 밥을 먹고, 둘이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했다. 계곡이 보이는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 친구는 여전히 나를 데리러 오고, 내가 가고 싶다는 곳을 데리고 다녔다. 돌아오는 길, 그 친구와 함께 본 하늘이 생각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밤.  


돌아오는 길. 그날의 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올여름 기분 전환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은 목표에 도달했다. 


사람 사이에도 만유인력의 법칙이 존재하겠지. 나를 이 땅에 발 붙이게 하는 그 친구에게 새삼 고맙다. 가을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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