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도식은 아마추어리즘을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날,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저 문장만큼은 잊지 않는다. 왜냐면 저 문장을 읽은 그때, 내 인생의 목표를 ‘무위도식’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정이 쉽지 않겠다는 걸 깨닫고 나름 작심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평생을 아마추어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무위도식으로 가기 위해 프로가 되겠다는 결심은 나름 엄숙하고 비장했다.
그래서 나는 무위도식을 실천하고 있는가. 당장은 그렇다. 돈을 벌지 않고, 잘 챙겨 먹고 살고 있으니 한시적인 한량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 나는 프로인가. 그렇다고 할 수 없겠다. 진정한 무위도식은 불안을 동반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오로지 나로서 안락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온갖 상념과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돈 벌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추어다.
내가 바라는 이상과 내가 실제로 처한 상황 사이에서 부대끼고 있다. 그러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이런 나를 견디는 게 지친다.
나의 비장함이란 대부분 한밤중에 쓸모없는 상상을 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무쓸모의 비장함은 자가 동력을 장착해서 밤새도록 나를 태운다. 동트기 전, 푸르스름한 빛이 창문으로 쏟아지면 그제야 무쓸모의 동력이 멈춘다. 아. 사람이 이렇게 한심할 수도 있다.
아주, 한심해지는 어떤 날은 또 다른 방어 기제가 작동한다. 나는 한 종류의 사람일 뿐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도 어떤 성질을 가진 무리의 한 존재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지금의 한심함은 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자기 위안해본다.
왜 무위도식을 결심했냐고? 그렇게 타고 났다. 그런데 삶은 참 얄궂다. 나와 내 일상과 내 생각은 늘 다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애 쓸수록 현타가 자주 찾아온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무쓸모의 동력이 힘차게 돌아간다. 난 오늘 밤도 잠들지 못할까. 못자면 어때. 어차피 내일도 할 일은 없는데.
프로의 무위도식으로 가기 위한 길. 변명도, 해명도 없이 뚝뚝 가야 하는데, 말이 많다.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