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앉다
힘든 여름이다. 중간에 감기에 걸려 고생한 후 체력이 도저히 돌아오질 않는다. 기운 내려고 죄 없는 닭들을 희생해 가며 삼계탕이니 뭐니 기력을 회복하려 했지만 쉽지가 않다. 마음이 쇠약해졌다.
회사의 분위기가 좋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적 압박을 받아오니 나 스스로에 대해 무너져왔던 자존감을 더 이상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내 자존감 따위 월급에 버린 지 오래지만 이젠 그것마저 안 되는 상황이 목을 조여 온다.
개발자로서 근무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중간에 커리어 패스를 조정한게 문제였을까? 생각해 보면 그냥 난 욕심과 자존심로 꾸역꾸역 버텨왔던 시간이 드디어 냉정하게 평가를 받은 거다.
첫아이 덕분에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월급은 지킬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쉬고 싶었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에 근무하는 건 지금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행운이다.
하지만 가슴한구석이 무언가 맺혀있는 듯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검은색 추에 매달려 깊고 깊은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을 가진다. 난 결국 여기까지 인 걸까. 내가 가진 환경 나의 약한 근성 모든 것들을 핑계 삼아 본다.
아이들을 맡기고 휴가를 떠났다. 그런데 이번 휴가는
작년과는 다르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 아름운 바다와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쉰다.
반짝이는 모래와 빛나는 바다 그곳에 나는 숨고 싶어 졌다. 멍하니 부유하고 싶어졌다.
해파리는 희로애락이 있는 존재일까. 멋진 신세계에서 추구하는 존재가 이런 게 아닐까.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잠깐이나마 이 넓은 시야에 감탄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상념의 존재를 축소시켜 본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한 발자국마다 적적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복잡한 마음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