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고거래 목록

보상심리

회사복귀 후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업무환경이 편하면서도 여전히 의문스럽다. 무언가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 사고하는 과정을 AI에게 시키고 난 지금 뭘 하는가 싶다.


글을 읽거나 쓰는 게 너무 싫었다. 이해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디까지 이해한 건지 스스로 되묻고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스무고개 하듯 맞춰나가는 과정 같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요즘 거이 외주화 시키듯 해버리니 슬슬 어색을 넘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뇌도 근육처럼 단련해야 한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난 더욱 게을러서 뇌마저 축 처진 내 뱃살처럼 흘러내릴 것 같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내게 사고의 끈을 놓치지 않는 영역이 있다면 이전부터 끊지 못하는 중고거래 영역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보내는 지금 중고거래일지를 남기며 내 뇌를 다듬어가 본다.


마스터 키튼 만화책

독서실 갔다 와서 새벽녘 티비에선 가끔 마스터 키튼 애니메이션이 흘러나왔다. 사막이나 유럽을 돌아다니는 보험조사관 이야기.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니 얄팍한 배경지식도 있었고 만화 특유의 적막한 분위기가 좋았다.


만화책을 오래간만에 보니 생각보다 텍스트가 많다. ‘만화책은 사고를 하지 않아서 도움이 안 된다’라고 누군가에게 들았던 것 같은데 뇌에 인내심을 허락하지 않는 이런 시대엔 만화책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정말 간만에 본 만화책이었고 만화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몰입이 되었다.


롤러코스터 Live 앨범

롤러코스터 앨범을 대부분 샀었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3집의 Last Scene을 듣고 그 세련된 음악에 빠져들었다. 성격이 좀 다르다고 느껴졌단 1, 2집을 하나씩 들으며 성인이 되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여유로운 사색을 동경했다. 고3이 될 때쯤 5집을 마지막으로 구매했고 그 이후 잊혀갔다.


라이브앨범은 음원으로 들어 어떤 곡이 있는지 다 알았다. cd 한 장을 사서 cd플레이어에 담아 듣던 그 시절의 감동이 다시 느껴지진 않았다. 대안이 많아진 탓인지 내가 이미 그들이 음악에서 이야기하던 미스터 김이 돼버려서인지.


지금은 그 당시의 내 기억만 남아있다. 이 cd는 학원 가기 전 이불속에서 음악만 듣고 행복해하던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뒤늦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