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소비 참회록

3만 원짜리 중고 파랑새를 찾아

중고거래 시장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중고거래가 소비의 큰 축이 됐다고 생각한다. 일본같이 임금이 몇 년 동안 오르지 않는 나라에선 이미 중고거래 시장이 거대하게 구축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고물가 시대와 예상할 수 없는 경제상황에 하나라도 덜 사고 저렴한 것을 찾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내가 마케팅이나 경제학을 전공으로 한 것도 아니고 소비에 대해 전문적인 글을 쓰기엔 한계가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소비란 것은 제한된 자원 안에서 발생하는 필수적인 소비와 선택적인 소비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선택적인 소비가 많으며 하나의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학창 시절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언제나 교통비를 제외하고 매점에서 군것짓을 할 정도의 소비를 하였다. 여러 불량식품이 그러했고 또한 문방구 구석에 있는 오락기에 나의 재화를 소비하였다.


부모님께서 용돈을 엄청 넉넉하게 주시는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선 다른 건 몰라도 책을 사는 것에는 관대하셨다. 실제 집에는 아버지께서 과거부터 보셨던 책들이 가득한 서재가 있었고 어머니가 간혹 책이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고 하여 처분하려고 할 때면 대노하셨다.


그때부터 나의 소비습관에 방향이 잡혔던 걸까. 내가 소비했던 대부분 물건들은 최대 3만 원 정도가 전부다. 만화책이라고 해봤자 그 당시 단행본이 3천 원, 조금 두꺼운 양장본이 5천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음악 CD도 굉장히 많이 샀었는데 지금과는 다르게 1만 5천 원 정도면 웬만한 음악 cd를 구매할 수 있었다. 옷 또한 그러한데 내가 대학교 재학했을 땐 현재 오픈마켓 1세대로 불리는 g마켓이나 11번가 등으로 옷을 사 입었었는데 매우 저렴한 티셔츠를 사 입거나 정말 간혹 가다가 아웃렛을 가서 옷을 사 입었다.


하지만 저렴한 소비를 한다는 게 소비를 적게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소비를 하는 형태는 주변에 보면 다양한데 정말 정말 필요한 것만 사는 타입, 이왕 살 거 비용이 들더라도 값어치를 하는 물건을 사는 타입, 그리고 나처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잔잔바리 같은 소비를 하는 타입이 있다.


나는 월급을 받은 날 이상하게 뭔가를 사야 된다라는 즐거운 압박감이 있다. 이러한 압박은 결혼하면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 사실 결혼 전엔 소비에 대한 압박감이 적었었다. 경력이 얼마 안 되다 보니 월급이 많지도 않았고 결혼하기 전이 돈을 모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라는 주변의 조언이 나에겐 그럴듯했다.


요즘은 결혼하는 시기도 많이 늦춰졌고 내 집마련이 더욱 어려워져 한 때 사고 싶은 거 그냥 쓰고 말자라는 흐름이 있었다. 나 또한 그런 흐름에 고삐가 풀렸다. 특히 혼자 있을 땐 구매할 배짱이 안돼서 못 사던 많은 것들을 아내의 재가가 떨어지면 나를 옥죄였던 3만원의 죄악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갖지 못했던 게임기, 프라모델, 카메라 등 중고거래 서비스엔 정말 다양한 분류의 상품들이 있다. 나는 정말이지 많은 시간을 중고거래 서비스에 사용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 물건의 공급 자체가 예전과 달라지면서 “이때가 아니면 이 가격에 살 수 없어!”라는 심리적인 초조함, 또는 유튜브에서 "미친 가성비" 같은 키워드가 붙은 제품 소개 혹은 후기 영상을 볼 때면 소비에 대한 갈망이 타오른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소비를 한 적이 있을까? 게임기, 카메라, 모니터, 스캐너, 포토프린터, 만화책, 옷 등 정말 많은 물건을 중고거래로 구매하였다.


최근에도 10년이 더 된 소니의 미러리스를 구매하였다. 이미 집에 카메라가 4대나 있다. 필름카메라 2대, 디카 2대. 요즘은 가볍고 센서크기가 큰 똑딱이가 대세다. 친구가 그 카메라를 처음 소개했을 땐 “조리개 값도 얼마 안 되고 가볍기만 하고 너무 비싸”라고 생각했지만 그 카메라의 결과물이 너무 좋다 보니 나 또한 작은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하지만 도저히 요즘 유행하는 그 카메라를 사는 건 아내의 재가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성적인 한계에 부딪혔고 대신 조금 저렴한 차선책을 선택하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두 아이를 양육하는 가장으로서 개인의 소비가 이렇게 커지고 있는 건 남들에게 욕먹을 만한 일이다. 특히 외벌이 가장이 이런 식의 소비를 한다는 건 스스로를 되돌아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여러 가지 스스로에 대해 변명을 해본다. 다만 여러 가지 변명 중에서 내가 내 스스로를 갉아먹고 내 인생을 다시금 무너뜨리 한심한 변명을 한다.


정상적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들이랑 길을 걷다가 광고에서 나온 비싼 장난감이 보이면 아이의 눈을 가리고 전력질주를 한다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남들에겐 참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난 그 이야기가 우습지 않다. 나의 아이는 나에게 한 번도 장난감을 사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연령별로 살 수 있는 장난감이 있다. 조카들의 선물을 살 때마다 가끔 고려했던 부분인데 나는 자녀가 있음에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나의 아이의 시간은 언제나 멈추있어서 인지 장난감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정말 소소한 소비를 많이 한다. 여러 가지 변명과 함께 많은 소비를 한다. 중고거래 서비스는 나의 막막한 현실에 매번 새로운 자극을 준다. 오늘은 또 무슨 물건이 올라와있을까 이건 내가 전부터 봐왔던 건데


물건을 발견하고 판매자와 거래를 하고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 설레고 그리고 도착한 물건을 확인할 때까지 그 오랜 시간이 나에겐 일탈과 같다. 나의 일탈은 소포에서 물건을 확인 후 다음날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현실과는 아무 쓸모없는 나의 일탈들이 널브러진 나의 책상에 어쩐지 허무한 기분이 든다. 나도 아이의 비싼 장난감이 부담이 됐으면 좋겠다. 일회성 소비들에 대한 나의 처참하고 구질구질한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