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이야기

만화를 보다가

최근 넷플릭스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매우 슬픔과 동시에 불안을 느꼈다. 힘든 삶을 사는 부모가 잔인한 현실에 짓밟히고 아이를 잃어버리는 이야기였다.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에 충격을 먹었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지만 현실에도 저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너무 슬퍼 울고 싶었다.


한 때는 좀 더 현실에 직면하는 이야기들을 선호했다. 연애에 대한 설렘보단 분명히 존재하지만 마주하기 어려운 상황에 집중하곤 했다. 블루발렌타인 같은 영화를 찾아보곤 이런 게 진짜야..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불행이야말로 인생의 기반이고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란 시스템이 운영되기 위한 찰나의 기름칠 같은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첫 아이가 태어난 날은 새벽이었고 비가 왔었다.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울었는데 매우 당연한 울음이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 후에 알았다. 아이가 반복적으로 얼굴이 빨개지면서 우는데 그때마다 산소포화도가 내려간다는 것을. 그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집에서 물건을 가져온다고 혼자 운전을 하면서 신한테 울부짖었다. 그때만큼은 하늘에 구름이 보였다. 마치 내 울음을 비웃듯 햇빛이 보였다.


둘째 아이는 예정일보다 한 달 정도 일찍 태어났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하늘은 쨍쨍한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전화가 왔고 배속의 아이가 위독해서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도 햇빛은 나를 비웃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됐다. 어머니를 따라 어릴 적부터 다녔던 교회였고 청소년기 인간자체의 폭력성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신이었지만 난 믿고 싶었다. 내 삶에 신이 응답해 줄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첫아이가 얼굴을 바닥에 처박은 채 침을 흘리며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신에게 기도해도 아이의 고통은 아이에게 맞는 약을 찾는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응답이 없다. 이미 난 이 삶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신의 은총 따위라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아픈 아이지만 내 아이들의 웃음은 하찮은 내 삶을 살게 한다. 회사에서 비교당하고 주변 잘 나가는 동창들의 허영심에 자글자글해진 내 자존감들. 아이들이 오늘 하루 잘 보냈다면 그리고 그렇게 주어 진 삶을 아이들이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그걸로도 내 삶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의미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냉혈한 현실에 좌절하게 되고 불안해진다.



더 이상 비극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이 설정한 괴로움을 즐기기엔 취약한 현실에 견디기 힘들다. 슬픈 이야기가 싫다. 사람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저 편하게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농담 같은 이야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