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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식공룡 Jun 12. 2022

나는 구속됐다(5)

평범한 회사원이 겪은 감옥 생활을 기록하다

<아내의 접견>


 의왕에 온 지 어느덧 사흘째. 오늘 구치소의 모닝콜은 터보의 ‘스키장에서’다. 아마도 계절 별로 노래를 몇 개씩 분류해놓은 것 같다. 조만간 <겨울왕국> 주제가 ‘렛잇고’가 나올 것 같다. 딸이 좋아해 내게 세뇌를 시켰던 노래인데, 언제쯤에나 딸이 부르는 렛잇고를 들을 수 있을까.     


 어쨌든 어제보다는 익숙한 아침이다. 짬이 찬 ‘빵잡이’라도 된 듯 익숙하게 모포를 갰다. 사소가 건네준 커피믹스에 따뜻한 물을 부어 모닝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푸*지오를 바라보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나체쇼를 펼쳤던 어제와 달리 이번엔 옷을 입고 정자세로 앉아 ‘각방 점검’을 마친 뒤 고기 없는 ‘고깃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조우종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운동했다. 푸시업 30개씩 4세트를 하고, 이어서 스쿼트 30회씩 3세트를 이어갔다. 방바닥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운동을 한바탕 하고 나니 뭔가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딱 1분 정도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인터폰 소리>

· 교도관 : “박훈민 씨, 오전 접견 나오세요.” 

· 나 : “네, 나갑니다.”

     

 30분 후면 구속 후 처음으로 아내를 보게 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아내가 무슨 말을 할까.’      


 아내는 강한 사람이었다. 지난 몇 달간 나와 관련된 추잡한 사건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겠지만….) 내가 이 사건으로 회사에서 쫓겨난 날, 아내는 “별일 아냐. 어차피 마음에 들지도 않는 회사였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줬다. 


 재판 당일 아침 우리 둘의 대화는 이랬다.     


· 아내 : “나 오늘 약속 있으니까, 오빠가 법원 다녀와서 애들 하원 좀 시켜줘.”

· 나 : “응. 알았어. 뭐 따로 할 말 없지?”

· 아내 : “뭐가 있어. 저녁에 봐.”     


 난 줄곧 무혐의를 주장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구속까지는 예상하지 않았다.      


 접견장 앞에 도착하니 대기실에 수용자 수십 명이 대기 중이다. 접견은 10분 단위로 이뤄진다. 조폭도 흉악범도 접견장 모니터를 바라보며 본인의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모니터에 <4호실, 10:00, 박훈*> 이라고 적혀있다. 원래 미결수는 무죄가 추정되기에 매일 접견 가능한 것이 원칙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주 1회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인간의 기본권마저도 침해하는 세상이었다.      


<안내 방송>

 “10시 접견 입실하세요.”     


 안내방송이 나오기가 무섭게 서둘러 움직인다. 다들 1초라도 더 만나려고 그러는 거다. 나 역시 4호실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밀폐된 유리 칸막이를 경계로 아내가 앉아있다. 눈이 빨갛다.     


· 나 : “밥은 먹었어?”     


 아내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다. 


 ‘화가 많이 났나….’     


 아내가 ‘마이크’와 ‘시계’를 가리킨다. 아직 접견 시작까지 10초 정도 남아 마이크에 전원 공급이 안 되고 있었다. 이내 마이크 밑에 빨간 불빛으로 숫자 ‘10’이 표시됐다.      


· 나 : “밥은 먹었어?”

· 아내 : “어. 오빠는 어때? 같은 방 쓰는 사람들은 어때?”

· 나 : “아. 다행히 2주간 독방이야. 잘 지내고 있어. 부모님이랑 애들은 어때?”

· 아내 : “어머님 아버님한텐 변호사가 ‘곧 나온다. 2심 준비 잘하겠다’고 설명했어. 애들한텐 아빠 동남아 출장 갔다고 했어.”

· 나 : “어. 애들한텐 영상통화 안 되는 곳으로 갔다고 해. 장인어른 장모님은 어떠셔?”

· 아내 : “‘음주 사고 내서 구속됐다’고 말씀드렸어.”     


 몇 마디 나누고 나니 숫자가 ‘7’로 줄어들었다.      


· 아내 : “변호사가 미안하다면서 ‘2심에서는 합의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네. 처음부터 합의했으면 구속되는 건도 아니었다고.” 

· 나 : “나 정말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근데 내가 왜 합의를 해야 되니?”     


 잠시 30초 정도 침묵의 시간. 숫자가 ‘4’밖에 남지 않았다.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 아내 : “오빠 근데 나한테 할 말 없어? 일단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니야?”

· 나 : “그래. 내가 많이 미안해.”

· 아내 :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 인생 망했어! 어떻게 할 거야! 열두 살 어린 애랑 모텔 간 게 자랑이니? 나 어디다 얘기도 못 해. 이 범죄자 새끼야”

· 나 : “미안하다. 근데...”

· 아내 : “됐고, 솔직하게 말해. 걔랑 뭐 했어?”

· 나 : “진심으로 아무것도 안 했어. 걔랑 술 먹다가 모텔 간 거 너무 미안해. 평생 미안해. 근데 정말 피곤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 아내 : “근데 왜 ‘준강제추행’이 나와?!!”

· 나 :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모텔 복도 CCTV 보면 강제도 아니야. 그냥 가서 피곤해서 잠만 자고 중간에 먼저 나왔다고.”     


 숫자가 어느덧 ‘1’밖에 안 남았다. 몇 달간 감정 변화 없던 아내가 유리 벽을 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 아내 : “알았어. 믿을게. 그럼 그 X년 내가 죽여버릴 거야. 킬러라도 써서 내가 죽여버릴 거야. 멀쩡한 집구석 망하게 한 X년 내가 반드시...”     


<안내음>

“접견 종료되었습니다.”      


 '바흐' 아니면 '슈베르트'스러운 멜로디가 잔잔히 흘러나오며 접견 종료를 알렸다. 아내는 여전히 울부짖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마이크가 꺼져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 교도관 : “거기 4호실, 끝났으면 나오세요.”

· 나 : “네... 알겠습니다.”      


 나는 아내를 등 뒤로 하고 터덜터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 인생 어떻게 하나?’  


(계속)




#구치소 #감옥소설 #서울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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