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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큐 Nov 27. 2023

[1]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

나의 누나와 외국인 매형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직업화가이다. 일 년에 한 번쯤 한국에 와서 1달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외국으로 돌아간다. 작년이었다. 외국인 매형이 나에게 작은 스케치 노트를 준 것이.. 매형과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나는 폴란드사람인 매형이 하는 영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는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매형이 나에게 노트를 주면서 한 말은 “네가 쉬고 싶을 때 그냥 아무거나 그려보라”라는 것이었던 것 같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책상 어딘가에 노트를 넣고 잠시 잊고 지냈다. “깨톡” 오래간만에 매형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림은 그리고 있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이런.. 잊고 있었는데…. “아직 그리지 못했다. 그리면 보내주겠다”라는 간단한 답을 하고, 잊고 지내던 노트를 찾아보았다. 노트의 봉투를 뜯고 안에 두툼한 종이를 만지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상의 노트를 보고 무엇을 그릴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라는 물음으로 자연스럽게 변경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지?    

어린 날의 나는 만화를 좋아했다. 아이큐 점프와 드래곤볼이 내가 만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용돈을 모아 산 만화책을 여러 번 보고, 또 보고, 다시 보고, 재미가 없어질 때쯤에는 스케치북에 만화책의 등장인물을 따라 그리곤 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가끔 선생님의 얼굴을 책상에 따라 그리거나 국어책, 수학책, 각종 교과서의 표지에 낙서를 하는 정도.. 이것마저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만두었지만..

결론은, 나는 그림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니 중학교 때 미술대회도 나갔었다.  

그래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은 후 다시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왔다.  

그냥 무엇을 똑같이 그리기는 싫었다. 똑같이 그릴 능력도 되지 않지만, 아무 의미 없는 그림을 그리기는 그냥 싫었다. 나는 자주 엉뚱한 생각을 하고, 보인 것을 한번씩 비틀어보는 것과 메시지가 명확한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펜을 들고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하루에 한 장씩.. 몇 장의 그림을 그리고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사진을 찍어 매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족이지만 직업이 화가인 사람에게 그림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한참 뒤에 답장이 왔다. 두근두근.. “너의 그림은 특이해. 너는 재능이 있다.” 가족이어서 하는 말이었겠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에 인정받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게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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